유성숙 작가는 '빛', '향기', '피어남' 이라는 테마로 작품에 '꿈', '사랑', '생명의 환희' 등을 담아내는 작가이다. 유 작가는 빛을 통해 향기롭게 피어나는 꽃의 형상을 보여준다. 점선과 선으로 시작된 꽃의 형태는 다채로운 색으로 아름답게 완성되지만 그는 꽃의 색채와 형태의 아름다움보다는 그 너머의 본질에 다가가기를 요구한다.유 작가는 “빛으로 피어난 꽃의 향기가 무한대로 확장되어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까지 널리 퍼져나감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주 속의 작은 존재인 나를 돌아보며 겸손한 자아를 발견함과 동시에
“성희승 작가가 그리고 쓰는 모든 것은 빛이다. 백의 세계가 갖는 세상의 모든 것은 빛으로 낸 상처를 또 다른 빛으로 치유 받는다. 그래서 세계의 모든 것은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과 멈춤의 순간을 모두 포괄한다. 그래서 그는 ‘어둠, 상처, 파괴’의 세상에서도 ‘밝음, 치유, 생성’의 백을 표현한다. 그것은 인간의 모든 활동과 사물의 존재가 소멸되고 부서진 부존재가 아니라 생성되고 재기된 존재로서의 온전체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희승 작가는 ‘빛’과 ‘소통’
꽃의 아름다움은 꽃의 실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꽃은 그저 한낱 흙에 뿌리를 박고 지탱해 있는 불안한 존재이다. 꽃의 아름다움은 인간 문화 속 관념의 형태로 포장되어 규격화된 언어로 나타나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를 부정한다. 꽃의 자태와 향과 색이 절대적으로 아름답지 않느냐는 식으로 반론한다. 그것은 그저 맹목적인 인식이며 꽃의 자태와 향과 색의 아름다움도 미학주의 관념 속에 있을 뿐이다.우리에게 길들여진 이러한 습성은 비단 꽃식물에 대한 관념만이 아니다. 주로 감성에 의존해 이루어지는 판단들이 대부분 이러한 경로에 노출된다. 꽃이
박해수 작가는 붓 대신 자신이 직접 갈고 닦은 여러 개의 날이 달린 헤라(나이프) 끝에 아크릴 물감을 뭍혀 원색의 실선들을 쌓아 만드는 노동집약적인, 일종의 액션 페인팅으로 새로운 점묘법을 보여주는 작가이다.그의 작품은 19세기 신인상주의 화가들의 점묘법을 떠올리며 ‘신 점묘법’ 이나, 1970년대 활동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을 연상케 한다. 물감을 섞는 대신 작은 색점들을 찍어 감상자의 눈이 색을 혼합해서 보게 하는 점묘법, 박해수 작가의 작품도 가까이에서는 원색의 실선들이 두드러지지만, 떨어져서 보면 실선들이
한성수 작가는 인체를 제재로 한다. 인체 조각은 인간의 형상을 그대로 복제하여 영속적인 존재감을 부여하려는데서 출발한다. 하지만 현대조각은 그의 경우처럼 인간의 형상을 복제한다는 재현 미학에서 벗어나 인간의 내면 탐색이라는 새로운 시각적인 체험을 유도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세계를 드러낸다는 것은 용이한 일은 아니다. 그러기에 사실적인 인간 형상과는 다른 새로운 조형적인 해석 및 표현 방법이 필요하다.그는 먼저 흙으로 자신이 구상한 인체 형상에 적합한 형태의 덩어리를 만든다. 그 흙덩어리에 은닉된 형상을 찾아내는 일련의 소조작업
사실주의적 작품은 수용자의 입장에서 볼 때 어떤 철학적 이념을 담고 있는 현대미술의 난해한 작품들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또 무엇을 그렸는지를 금방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예술적 의미 찾기로 힘들어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쉽게 그림의 형식과 내용에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친밀감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은 대상의 모방이라는 사실주의적 그림의 특징 때문이다.인간의 모방의 능력은 오늘의 문화와 문명을 만든 가장 큰 힘이다. 모방에 의해 인간은 앞 세대의 경험과 지식을 다음 세대로 옮길 수 있었고 그것을 축적할 수 있었
오늘날 전문 미술 분야에 비해 일상적 시각 환경이 우리에게 익숙한 상황에서 굳이 대중들이 미술을 접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단적으로 미술이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고 모든 사람이 동의해야 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하지만 본인은 개인적으로 미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왔고, 지금도 인류의 훌륭한 문화적 발명품 중 하나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우리 눈앞에 펼쳐진 다양한 이미지들과 형상들의 유희를 볼 수 없다면, 사람들의 다채로운 표정과 자세, 삶의 풍부하고 섬세한 모습들, 다채
국내 미술시장은 19세기 말부터 1950년대까지 한국미술의 ‘근대기’를 지나 현대에 들어서 최근 30년간의 많은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아직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있다.미술시장에 대한 이해와 정서적인 의식의 개방이 필요하고, 음성 거래의 근절과 안정적인 유통구조가 구축되어야 한다. 또 오프라인 시장을 넘어 온라인을 통한 시장이 활성화되어야 하고, 미술시장의 다양성과 전문성을 통한 질적인 향상이 필요하다. 결국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미술시장의 추세와 체계에 맞는 세계화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이러한 제반 요소들이 충
권순범 작가는 원초적인 재료들을 통해서 회화, 판화, 도예, 설치, 건축 등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 중에서도 그가 주재료로 사용하는 “유리”는 물이 가진 유연성을 고정화시켜 놓은 것이다. 서로 되비친다는 점에서 유리와 물은 서로 닮았고, 빛을 매개로 그 속성이 잘 드러난다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 한다.유리는 타자를 비추이지 않는 대신 자신을 빛내고 자신이 빛을 허공으로 내쏘아 자기 속의 그림자를 보인다. 이런 특성상 그의 작품은 조명에 의해 다르게 보여진다는 점에서 공간이 주는 현장성을 그대로 표현 과정의 하나로 수용하
예술은 가진 자와 못가진 자가 함께 소비한다. 미술품은 필수 불가결한 소비재가 아니기 때문에 구입자의 취향에 크게 좌우될 뿐만 아니라 거의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런 점에서 미술품은 장식품이자 사치품으로 가진 자들의 향유물이다.근대 이후 미술품은 자본가들의 소비재였다. 대중 사회인 오늘도 소위 잘 팔린다는 작품들을 살펴보면 결국 가진 자들의 취향에 맞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미학적 고찰조차도 이러한 시장의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다. 팔리지 않는 미술품의 생산은 지속되기 힘들고, 지속되더라도 자칫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될 수 있다.미
최창봉 작가는 한국화 전통의 화선지라는 매체를 통해 이 시대의 우리 미감을 찾아가는 작가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패턴의 연속이며, 화선지의 두께를 가지고 작업한다. 그는 화면 위에다 색채를 칠하지 않고, 채색된 반투명한 화선지를 자신이 원하는 색감이 드러날 때까지 반복적으로 올려 색채를 만들어낸다.화선지를 겹겹이 겹쳐지며 스며든 색채의 투명하고도 깊은 울림, 쌓아 올리면서 생기는 선과 색면을 통해 한국적 추상 언어를 느낄 수 있다. 번거롭고도 오랜 시간을 요하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동시에 선, 색, 면의 서구적 기초 조형인식을 가
예술작품은 일반화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특이함과 개성을 지향한다. 일반적인 이해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잡힌 삶과 세계를 보여주려는 것이며, 일반적인 감성에 동의하거나 동조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자신의 세계를 일반화하여 보여주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그리고자 하는 세계에 대한 일반적 이해와 작가의 독특한 시선 간의 차이에 대한 표현이며, 그 차이는 난해함이나 개성으로 드러나는 것이고, 그 난해함이 곧 예술작품의 난해함이 되는 것이다. 그런 점이 때로는 작가에게 사회적 궁핍을 강요하게 되며
기억은 자기체험의 보존 방법이자 무시간적 존재다. 일렁거리는 파도 위에 작은 배가 떠가듯 기억은 망망대해 위로 떠다니며 현실과 과거 사이로, 혹은 과거를 현실로 불러내고 현실을 과거로 밀어내듯 그렇게 오가는 여정을 보인다. 그 여정 속 순간의 잔상들이 추억을 만드는 연결 통로가 되어 흔적으로 남는다.김유준 작가는 십수 년의 세월을 이러한 맥락을 추구 해오면서 그의 기억 속 시간여행을 즐기고 있다. 김작가는 “저는 체질적으로 제도를 싫어하며 특히 작업에 있어서 합리적인 것을 싫어합니다. 인간이 이성의 잣대로 자연을 해석하고 인과율의
강묘수 작가의 작업은 숭고를 화두로 한 채, 전통과 현대, 서구와 동양 그리고 공간과 시간을 자연주의 미학 속에서 ‘공존’ 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마주하게 하고, 세계를 대면하는 작가 자신에게는 치유의 제스처를 건넨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작품 세계는 ‘화해와 치유를 위한 공존’을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한편 강묘수 작가의 작품에서 주목할 것은, 전통적 미학 용어인 ‘숭고’를 ‘빛의 숭고’라는 개념으로 새롭게 해석하면서 ‘무위자연’의 미학을 조형적으로 실천한다는 것이다. 점묘법으로 빛을 명멸하게 하고, 희미하게 산포하는 방식이 대표적
예로부터 동양 문화권에서는 자아의 개별적 주관성보다 세계와 어우러지는 전일성(全一性) 내지 합일성(合一性)이 중시되었다. 그 사유형태의 근원을 불교사상과 노장사상 및 유가사상에서 볼 수 있는데 신비적 직관에 따른 통합적 세계를 지향하는 경향에서 찾아볼 수 있다.금사홍 작가의 작품 속 화두는 이러한 동양 사상에 입각한 '전일적(全一的) 회화’라고 할 수 있다. ‘전일적’이란 전체성을 띠고, 개체가 곧 전체가 되는 과정이며, 전체에 대한 인식 속 유기체적 자연관에 입각한 개체들의 합일을 가리킨다. 전체성을 띠고, 개인의 고유 경험을 통
평면 백자 도판 위에 매화, 소나무, 대나무, 산수, 도자기 등 한국적인 정서가 가득 담긴 소재들을 그려 가마에 구워내는 작업을 하는 오만철 작가. 그는 우리 전통 수묵화와 도자기의 합작품으로 공예 장르의 한계를 넘어 ‘도자 회화’ 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그의 작업은 전통 한국화와 도자의 융합을 통한 새로운 모색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국내 도입 10년 남짓한 ‘도자 회화’는 도자기의 기능성을 회화에 적극 활용해 도자기 특유의 전시·보관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뛰어난 영구성을 자랑하는 새로운 형태의 회화이다. 작가는 20
상품가치는 대중들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자 그에 따라 결정된다. 모든 상품들처럼 미술품도 화폐와 동질적인 방식으로 변환 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면 작품의 의미 역시 화폐체계 속 그것이 차지하는 위상으로 환원될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의 현상이다.예술은 키치가 되어 구매자들의 취향에 부합한다. 미적 판단기준이 부재한 가운데는 예술작품의 가치를, 그 이윤에 따라 평가하는 것이 가능하고 유용하기조차 하다. 사람들이 스스로 예술작품을 투자나 오락의 대상으로 삼을 때, 취향은 섬세해질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아트페어를 예로 들어보자. 아트
이성영 작가는 수묵화, 구상화 및 추상화, 오브제를 넘나들며 작품에 대한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이 시대에 맞는 회화 언어를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이 제 작업 입니다.”라는 이성영 작가. 이런 생각을 반영한 그의 작업은 동양적 내용과 서양적 재료, 기법의 어울림으로 새로운 감각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다양한 재료(칼, 소반, 알약 캡슐 등)들을 활용해 자신만의 어법인 질감을 개발했고, 이를 바탕 삼아 전통적 구성 방법과 변형된 전통 기물을 조합해 이성영식 현대 회화를 만들어나가고 있다.이성영 작가가 사용하는 다양한 재료 속에는 버
사람들은 저마다 새로움과 이상을 갈구한다. 이를 충족시켜 주는 곳이 ‘미술관’, '갤러리' 라면 어떨까.소비자들은 지루함을 원치 않는다. 소비 문화 속 행복한 삶이란 지루함에서 벗어나는 삶이다.하지만 이미 미술계에는 새로운 것이라고는 남아 있지 않다. 현대화된 것을 다시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재구성할 뿐이다. 무에서 유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미술관’, ‘갤러리’ 라는 장소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것의 만남을 가능케 한다. 더불어 발생하는 현대미술에 대한 대중적 기대는 일종의 쾌락과 자극이 된다.시장 중심의
‘비단은 100년, 한지는 1000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의 한지는 수천 년 동안 그 우수성을 인정 받아왔다. 강연수 작가는 이러한 한지로 대상을 재해석해 독창적인 작업 방식을 펼치고 있다.강연수 작가는 프랑스 4대 살롱전 중 하나로 꼽히는 ‘살롱 앙데팡당’(Salon des Independants) 한국전에서 작년 최우수상에 이어 올해 특별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살롱 앙데팡단전’은 미술학교와 아카데미가 주도하던 관료적인 살롱전에 반발한 화가들이 모여 1884년부터 개최 되어온 권위 있고 유서 깊은 살롱전이다. 신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