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ul Cézanne, Four Apples, 1881
Paul Cézanne, Four Apples, 1881

 

누구나 아는 것을 새롭게 보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일상적인 시각을 넘어서지 못한 구상화 혹은 사실화는 예술적 가치가 떨어진다고 볼 수밖에 없다. 기법상의 매너리즘, 감성의 상투성 등이 그런 문제 요인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런 문제점을 넘어서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를 넘어서기만 한다면 한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독자성을 얻게 되기도 할 것이다. 그만큼 음영이 쉽게 드러나는 곳이 구상화의 세계이다.

누구나 아는 것을 새롭게 본다는 것은 대상에의 충실성 부분에서 어떤 시각을 선택하느냐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철저한 객관성을 통해 작가의 감성이 억제되고 엄밀하게 드러나는 대상의 개체성을 중시할 것인가, 아니면 형상은 같은데 색상 처리를 보다 개성적으로 할 것인가, 인상적인 색채 구사와  형상을 통해 감성적 접근을 통한 분위기 묘사를 위주로 할 것인가, 사물간의 병치를 통해서 독특한 시공간의 해석을 제시할 것인가 하는 등의 태도 선택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이다.

어느 쪽으로든 엄밀하고 집중적인 표현이 작품에서 발견될 수 있다면 설령 작품 속 다소 부족함이 있다 하더라도 보강됨은 물론이고, 작가가 보이고자 하는, 또는 구축하고자 하는 세계가 보는 이들에게 메시지로 전달될 것이다.

만일 작품 속에 엄밀하고 집중적인 표현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감상자는 상투적 감성의 확인 말고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작가가 화면을 통해서 나타내려는 의식의 불투명함만 보이게 될 것이다.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 고유의 시각을 통해 새로운 감성과 새로운 메시지가 탄생하고 일상이 경이로 바뀌는 것이지, 단지 대상 묘사만으로 작품이 형성되거나 한 작가의 세계가 구축된다고는 볼 수 없다. 특히 소재의 한정과 평이함이 갖는 친근감이 친근감 이상의 것을 주지 못할 때 그것은 작가의 한계로 남게 되는 것이며, 그에 대한 반성의 심도 여부가 작품성의 성패를 가늠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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