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엘라의 畵音] 인생은 비극일까? 희극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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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라의 畵音] 인생은 비극일까? 희극일까?
  • 아트뉴스
  • 승인 2021.02.0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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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진 오필리아


"그 애가 화관을 나뭇가지에 걸려고 버드나무에 올라갔는데 그만 가지가 꺾이면서 물속에 빠지고 말았단다. 옷자락이 물에 퍼지면서 그 애는 인어처럼 물에 뜬 채 옛 찬송가를 불렀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마침내 서서히 물속으로 가라앉고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끊기더니, 가엾은 그 아이는 진흙 바닥에 휘말려 죽고 말았어."

셰익스피어의 '햄릿' 4막 7장에 나오는 대사다.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 왕비가 오필리아의 오빠인 레어티즈에게 오필리아의 죽음을 전하고 있다. 자신의 아버지가 햄릿에 의해 살해당하고 사랑마저 잃은 그녀가 택한 것은 바로 죽음이었다.

물속에 빠진 그녀가 죽음을 앞둔 순간 노래를 부르며 인어처럼 떠 있는 모습이라니. 그토록 초연하게 죽을 수 있었던 건 모든 걸 포기한 채 죽음만이 자신을 편하게 해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을까? 죽음마저 아름답게 느껴지는 오필리아의 비극적 죽음은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외젠 들라크루아,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살바도르 달리 등 그녀를 주제로 그린 화가들은 참 많다.

하지만 그중 가장 널리 사랑 받는 작품은 존 에버렛 밀레이의 '물에 빠진 오필리어'다. 밀레이는 라파엘 전파를 대표하는 영국 화가다. 라파엘 전파는 자연적인 것과 정신적인 면을 그림에 담으려 노력했는데 종교적 주제와 더불어 문학적 주제를 자주 사용했다. 이 그림에서 오필리아는 물속에서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밀레이는 문학적 주제인 오필리아를 자연과 하나가 되도록 그려내기 위해 영국 남부 서리 근교의 호그스밀강 근처로 갔다. 그러고는 하루 10시간 이상씩 작업을 하며 몇 달씩 배경을 그렸다. 작품 속 인물만큼이나 배경을 그리는 데에 엄청난 정성을 쏟은 그는 자연 속 다양한 식물과 꽃들을 작품에 등장시킨다.

버드나무는 버림받은 사랑을, 쐐기풀은 고통을, 데이지는 순수함을, 팬지는 헛된 사랑을, 아도니스는 슬픔을 담아내고 물망초와 양귀비는 죽음을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연 속 물 위에 유유히 떠 있는 오필리아. 가라앉지 않은 그녀의 모습으로 보아 그녀는 아직도 노래를 읊조리고 있으리라. 그녀의 죽음은 지극히 아름답고 비극적이며 낭만적이다. 밀레이는 그림 속 오필리아의 모습을 정교하게 그리기 위해 모델 엘리자베스 시달에게 실제 물을 담은 욕조에 누워있기를 요구했다고 한다. 오랜 작업기간 탓에 시달은 폐렴에 걸리기까지 했다고 하는데 밀레이의 열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음악에서는 앙브로즈 토마가 오페라 '햄릿'을 작곡했는데 그중 오필리아의 아리아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오필리아의 '광란의 장면'(Mad Scene)은 오필리아가 햄릿에게 버림받고 미쳐가다 결국 죽음에 이르는 내용을 담고 있다. '광란의 장면'이란 19세기 초 이탈리아와 프랑스 오페라에서 유행했던 것으로 말 그대로 광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주인공(주로 프리마돈나)을 돋보이게 만드는 장치로 사용됐다.

'햄릿'이 작곡되었을 당시 광란의 장면은 이미 유행이 지난 것이었을 테지만 토마는 오필리아에게 15분에 달하는 분량을 선사한다. 오필리아의 버림받은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햄릿의 사랑을 회상하는 장면, 그리고 결국 미쳐가다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는 그녀의 절규. 서정적인 멜로디와 격정적인 소프라노의 창법이 극에 달하는 이 곡은 광란의 장면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원작에서 오필리아의 죽음 장면은 여왕의 대사로 간단하게 처리됐던 것에 반해 오페라에서의 긴 아리아는 오필리아를 사랑하는 관객들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이 오페라의 흥미로운 점은 결말이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에 속하는 '햄릿'의 결말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원작에서는 햄릿이 죽음을 맞이하는 반면 이 오페라에서는 햄릿이 왕위에 오르는 이른바 '해피엔딩'을 맞는다.

 

 

 

 

 


토마의 또 다른 대표작은 오페라 '미뇽'이다. '미뇽'은 괴테의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도제시대'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괴테가 빌헬름의 입장에서 작품을 이끌고 나간 반면 토마의 오페라에선 미뇽이 주인공이다. 미뇽은 어릴 적 집시들에게 납치당한 귀족이다. 집시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모습을 본 빌헬름이 그녀를 구출하게 되고 그녀는 빌헬름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미뇽' 중 가장 유명한 곡은 제 1막의 아리아 '그대는 아는가 저 남쪽나라를'이다. 빌헬름이 미뇽을 구출한 뒤 미뇽에게 고향이 어딘지 물어보는데 이때 미뇽이 부른 노래다.

"당신은 아시나요, 저 레몬 꽃 피는 나라를"로 시작되는 이 곡은 고향과 떠나온 집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그곳으로 돌아갈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또한 어릴 적 헤어진 아버지와의 만남을 예견하고 있다. 미뇽은 극 중 등장하는 유랑음악가 로타리오와 내내 함께 하지만 그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로타리오 역시 딸을 알아보지 못하다가 마지막 우여곡절 끝에 미뇽이 어릴 적 살았던 저택으로 돌아가게 되고 결국 서로를 알아보며 오페라의 막이 내린다.

'물에 빠진 오필리아'와 더불어 밀레이의 또 다른 대표작 중 하나는 '눈먼 소녀'이다. 눈을 감은 소녀와 그녀의 품에 안겨 무지개를 바라보고 있는 어린아이를 그린 이 작품은 밀레이가 실제 소녀들을 보고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무릎 위에 악기를 놓은 눈먼 소녀의 표정은 내면을 바라보듯 차분해 보인다. 어쩌면 지친 삶에 초연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녀들의 낡은 치마는 그들의 삶이 녹록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둘의 꼭 잡은 손에선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이 보인다. 무지개 아래 놓인 집과 같은 곳에서의 안락한 생활을 예견하는 듯 보이는 것은 이 그림을 보며 떠올린 '미뇽' 탓일 거다.

토마가 바꾸어버린 '햄릿'의 결론처럼, '눈먼 소녀' 뒤에 드리운 무지개처럼, 우리 인생의 결말도 늘 희극이길 바라본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그러므로 나는 멀리 보려고 노력한다." (찰리 채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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