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도 유쾌할 줄이야…무대 위의 '자이툰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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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도 유쾌할 줄이야…무대 위의 '자이툰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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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국립극단)


'이거 너무 웃기잖아. 웃어도 되나. 너무 가까운데. 저렇게 정색한 면전에다 대고 웃었다가 대사라도 까먹으면 어째. 흐흐 그래도 너무 웃기네. 흐흐흐. 마스크가 있어서 다행이야.'

16일 백성희장민호극장 무대에 박상영의 소설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가 올랐다. 125분 동안 여기저기서 키득키득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그러든 말든 배우들은 관객 코앞에서 노래방 탬버린을 흔들어대며 열연을 펼친다. "아쉬울 만큼만 꼭 달아나는 게 그런 게 바로 사랑인걸~."

틀을 깬 임지민의 연출은 신선하고 효율적이었다. 20명 남짓한 관객들은 객석이 아닌 무대 중앙에 아무렇게나 놓인 듯한 360도 회전의자에 앉았다. 배우들은 이들 사이를 가로지르고, 극장 전체를 뛰어다니다가 텅 빈 객석에 앉아 연기한다. 관객은 시선만 따라가는 게 아니라 몸도 이리저리 돌려가며 관람한다. 장면 전환이 별거 아니다.

소설 '자이툰 파스타' 속 찌질한 청춘들의 방황은 이같은 연출로 한층 더 찌질하게 다가온다. 명품 브랜드 샤넬 추종자이자 현대 무용을 전공한 백수 '왕샤'(권정훈 분)와 세상에 없는 퀴어 영화를 만들겠다며 이라크 파병까지 다녀왔으나 영화판에서 밀려난 무명 영화감독 '나'(권겸민 분)는 노래방 도우미를 부르지 않아 푸대접을 받았다며 마이크와 탬버린, 재떨이까지 훔쳐 도망가는 웃픈 청춘들이다.

관객 바로 앞에 선 배우들의 연기는 능청스럽다. 걸그룹 노래에 맞춰 군무도 추고 옷도 갈아입고 서로 때리고 울고, 악다구니를 쓰다가 술에 취해 택시를 잡겠다며 비틀거린다. 일어나서 한쪽 어깨라도 부축해주고 싶고 등도 토닥여주고 싶은 거리,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다. 그런데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눈은 '왕샤'를 보려고 몸을 돌리다가 '나'를 보고 있는 옆 사람과 더 자주 마주친다.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국립극단)

 


연출은 파격을 꾀하면서도 원작의 말맛은 그대로 살렸다. "현대무용? 그거 바닥 기어 다니면서 내가 개다 우기고, 검은 옷 입고 내가 점입니다 우기는 거 아냐?", "성매매 안했다고 이리 푸대접을 한단 말이야? 이성애자들 진짜 안되겠네, 동성애자의 품격을 보여주자." 동성애를 신파로 소모하는 영화는 물론 예술계 전체를 비트는 유머가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임지민 연출은 원작을 읽으면서 떠오른 '원 오브 뎀'(One of them)의 의미를 무대 구성과 형태에 반영했다고 한다. 관객들이 단정하게 정리된 무대 위의 같은 장면을 함께 보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 마음대로 볼 수 있도록 장면을 만들어주고 싶었다는 의미다.

'가슴 속에 우물'이 없는 성소수자 이야기는 현실적이지 않다는 사람들에 그들도 별반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존재이며, 한곳에 모여 있어도 사람은 어차피 우리가 아닌 한 명의 개인으로 존재하는 것이란 메시지가 빙빙 돌아가는 회전의자를 통해 오롯이 전해진다.

연극은 국립극단이 4개 공연을 선보이는 프로젝트 '셋업 202' 중 하나로 5월10일까지 한다. 관람료는 전석 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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