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프레디 머큐리와 일본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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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프레디 머큐리와 일본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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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미국 코네티컷 뉴헤이븐에서 공연 중인 프레디 머큐리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우리나라 성인 중에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지 않은 사람을 찾기란 정말 힘들다. 고령으로 인해 아예 영화관을 갈 수 없었거나 극장이 없는 곳에 사는 사람을 제외하면 최소 한 번 이상 이 영화를 감상했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한 번도 안 본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것처럼 한 번만 본 사람도 역시 찾기 힘들다. 나의 지인 중에는 영화관에서 예닐곱 번을 감상한 사람도 있다. 누적 관객 1000만명이라는 숫자는 이렇게 나온 것이다. 최근에는 지상파에서도 '보헤미안 랩소디'를 방영하기도 했다.

나는 지금까지 '보헤미안 랩소디'를 세 번 봤다. 처음 영화관에서 볼 때는 그 대목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두 번째 봤을 때 그 부분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영화 후반부에 프레디 머큐리(라미 말렉 분)가 런던의 자택에서 나이트가운을 입고 있는 모습이다. 나이트가운 장면은 두 번 나온다. 동양풍 디자인의 실크 나이트가운! 그런데 정지 화면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본풍 잠옷이다. 프레디는 왜 일본풍 나이트가운을 입었을까? 나는 '도쿄가 사랑한 천재들'을 쓰면서 서문에 프레디 머큐리의 일본 사랑을 살짝 언급했다가 분량이 넘쳐 들어낼 수밖에 없었다.

에이즈 투병하며 마지막으로 쓴 곡

프레디 머큐리(1946~1991), 말론 브란도(1924~2004), 찰리 채플린(1889~1977). 생몰 연대와 활동 시기가 다른 세 사람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이들이 모두 전성기 때 일본 도쿄를 방문했다는 사실이다.

프레디 머큐리는 1975년과 1976년 두 차례 도쿄에서 공연을 가졌다. 세계 순회공연을 하며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공연을 한 곳이 도쿄다. 1975년 4월17일, 프레디 머큐리가 탄 여객기가 도쿄 하네다공항에 도착했을 때였다. 3000여명의 일본 팬들이 몰려들어 공항 입국장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부도칸(武道館)에서 첫 공연 이후 프레디는 이른바 '일본빠'가 되었다. 프레디뿐이 아니라 멤버 모두가 일본 마니아가 되었다. 퀸 연구가들은 이런 해석을 한다.

퀸(Queen)이 데뷔한 게 1973년. 일본 첫 공연은 데뷔 2년 뒤인 1975년에 이뤄졌다. 퀸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전이다. 데뷔 초 퀸이 영미권에서 냉랭한 평가를 받고 있을 때 일본에서는 퀸의 음악이 대중을 파고들었다. 록 음악잡지를 통해 퀸의 스토리가 꾸준히 소개되어 두터운 팬덤을 형성하고 있었다. 퀸은 일본에서 '아이돌'이었다. 도쿄에서 예상치 못한 '슈퍼스타' 대우를 받은 퀸 멤버들은 이 감동을 잊을 수 없었다.

 

 

 

런던 켄싱턴에 있는 '가든 롯지'의 외관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이것이 시작이었다. 프레디는 일본의 문화·예술에 빠져들었다. 영미권 문명에서 느끼지 못한 영감을 일본 문화에서 발견했다. 우키요에(浮世繪), 도자기, 일본 정원, 일본 의상이 프레디를 사로잡았다. 프레디는 1980년 유서 깊은 '네오 조지안' 양식의 '가든 롯지'(Garden Lodge) 저택을 50만 파운드에 매입했다. 그리고 일본 예술가들을 초빙해 인테리어와 100평 규모의 정원을 일본식으로 꾸몄다. 마당에 벚나무를 심었고, 연못을 만들어 비단잉어를 풀어놓았다. 정원 가운데에 다실(茶室)을 만들어 틈틈이 여기서 곡을 썼다.

에이즈(AIDS)로 고통을 겪으며 그가 작업한 마지막 곡이 '라 자포네즈'(La Japonaise)다. 프레디는 이 곡을 일본말로 노래했다.

"아름다운 아침이 밝아온다 / 새벽이 말을 건넨다 / 마음의 샘이 솟아 나온다 / 꿈결처럼 새벽, 계절, 꿈, 희망, 바다와 빛이 부르고 있다···"

가사에 후지산이 나오고, 교토와 도쿄가 등장한다. '라 자포네즈'는 바로 프레디가 정원 다실에서 쓴 작품이다.

프레디는 1991년 에이즈로 세상을 뜨면서 자택 '가든 롯지'를 연인이었던 메리 오거스틴에 유산으로 남겨주었다. 메리 오스틴은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프레디가 무명일 때부터 그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알아본 여성이다.

런던 켄싱턴에 자리한 '가든 롯지'는 프레디 팬들에는 버킷리스트 영순위에 랭크되는 곳이다. 인터넷에 보면 '가든 롯지 다녀왔다'는 블로그가 더러 보인다. 높은 담장이 쳐져 있어 안을 들여다볼 수 없지만 프레디 팬들은 이 담장의 벽돌을 쓰다듬으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한다. 장소성(場所性)의 힘이다.

영화에서 '가든 롯지' 내부가 여러 번 비친다. 그러나 집안에서 벌어지는 질펀한 파티와 멤버들의 갈등 관계를 중심으로 카메라가 따라가다 보니 실내와 정원은 '페이드 아웃'으로 처리된다. 나는 짧게 스쳐 지나가는 벽면과 장식을 관찰했다. 온통 일본풍이었다. 사이즈가 다양한 그림, 실내등, 우키요에 부채, 그리고 붙박이로 걸어놓은 전국시대 무사 의상까지. 19세기 파리를 비롯한 유럽 문화계를 휩쓸었던 일본풍(Japonerie)을 '가든 롯지'에 옮겨놓은 것 같았다.

프레디의 삶과 음악을 이해하는 데 있어 '일본'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46년이라는 짧은 생애에서 후반기 18년은 영광과 고독이 교차했다. 이 시기 천재 뮤지션을 사로잡은 게 일본이었다. 퀸은 일본 공연을 두 번 했지만 프레디는 개인 일정으로 일본은 다섯 번이나 방문했다. 분초를 다투는 초특급 스타가 빡빡한 스케줄을 빼 다섯 번을 찾았다는 사실! 프레디의 일본 탐닉을 영화에서는 실크 나이트가운으로 처리했다.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핀 연못과 다리'(1899)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카잔차키스가 찬미한 일본 정원

문화상품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K팝은 한국이 세계에 수출한 문화상품이다. 세계에서 정원을 수출한 나라가 두 나라가 있다. 영국과 일본이다.

샌프란시스코 금문교(Golden Gate) 남쪽에는 영국 정원과 일본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일본 토요타자동차 공장이 있는 도요타시(市) 외곽의 쿠라가이케에는 영국 정원이 있다.

프랑스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의 하이라이트는 맨 꼭대기 층의 '모네방'이다. 타원형의 전시 공간에 빙 둘러쳐진 '수련'(垂蓮)을 보노라면 소름이 돋는다. '수련'은 모네가 파리 북서쪽 지베르니의 작업실에서 완성한 것이다. 모네는 지베르니 작업실에 일본식 정원을 꾸몄고, 이 정원에서 작품의 영감을 받았다. '수련'은 정원 연못에서 피어난 꽃이다. 어디 그뿐인가. 모네가 아내 카미유를 모델로 그린 초상화 '일본 여자'를 보면 그가 일본 문화에 얼마나 심취해 있었는지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대만·필리핀·싱가포르·인도·이스라엘·호주 (이상 아시아·오세아니아), 미국·캐나다·코스타리카·니카라과·칠레·우루과이·아르헨티나·브라질(이상 북·중·남아메리카), 영국·북아일랜드·스코틀랜드·아일랜드·벨기에·네덜란드·프랑스·모나코·오스트리아·독일·헝가리·불가리아·세르비아·터키·노르웨이·스웨덴·러시아(이상 유럽)

모두 일본 정원을 가진 나라들이다. 아프리카를 제외한 전 세계가 일본 정원을 수입해 감상한다. 인간은 수렵시대 숲속에서 접했던 자연에 대한 노스탤지어로 정원을 가꿔왔다. 미국에는 앞서 언급한 금문교 공원을 포함해 일본식 정원이 35곳이나 있다. 영국에도 큰 규모 일본 정원이 8곳이나 있다. '가듯 롯지'는 규모가 작아 이 리스트에 끼지도 못한다.

왜 세계인은 일본 정원 앞에서 숨이 멎고 정신이 혼미해질까. 헤이안(平安)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수백 년 역사의 일본 정원은 서양인을 첫눈에 매료시킨다. 이어령의 표현대로 일본의 '축소 지향적' 정원 미학이 확대지향의 서양인을 압도하는 것이다.

 

 

 

 

 

산젠인의 이끼정원. 조성관 작가 제공

 

 


교토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정원이 여러 곳 있다. 긴카쿠지(銀閣寺), 킨카쿠지(金閣寺), 료안지(龍安寺), 오하라 산젠인(三千院) 같은 곳이다. 긴카쿠지, 료안지, 산젠인에 한번 가보면 서양인들이 왜 일본 정원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지가 저절로 설명된다.

산젠인에 가면 정원에 대해 가진 모든 고정관념이 모래성처럼허물어진다. 바위와 나무에 붙어 서식하는 이끼를 정원의 주제어로 끄집어 올린 발상에 경탄한다. 이끼 정원의 규모에 입을 다물기 힘들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지의류(地衣類)에 고독이라는 개념을 투사해 이끼를 정성스럽게 키워온 일본인. 긴카쿠지도 정문을 들어서면 휘돌아가는 모래 정원이 내방객을 맞는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산젠인 같은 규모는 아니지만 이끼 정원이 펼쳐진다.

료안지는 또 어떤가. 모래와 바위만으로 세상에 없는 세계를 창조해냈다. 료안지에 오면 누구나 경건해진다. 나는 처음 료안지 정원과 대면했을 때의 그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산만하게 살아온 내 영혼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절대 고독 앞에서 어리둥절했다. 고요, 고독, 침묵. 16세기 이 정원을 설계한 정원사는 이빨로 새끼를 물고 도망가는 호랑이를 표현하고자 했다는데 수세미처럼 메마른 나의 감수성은 호랑이는커녕 고양이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교토 료안지(龍安寺)의 정원. 조성관 작가 제공

 

 



'그리스인 조르바'의 소설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유럽에 전체주의 암운(暗雲)이 드리우기 시작한 1935년 일본과 중국을 여행하며 동양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을 찾고자 했다. 이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 '천상의 두 나라'다. 카잔자키스는 교토에서 한 승려로부터 이런 설명을 듣는다.

"이 바위 정원은 웅장함과 황폐함과 접근 불가능한 신성함을 투사하고 있어요. 그래서 승려는 황무지에 가는 대신 도심에 있는 이 정원으로 와 이곳에서 그의 영혼이 명상과 구원을 위해 필요로 하는 사막을 발견하는 것이지요."

카잔차키스는 일본 정원을 가리켜 이렇게 표현했다.

'그것은 인간이 도달한 지혜와 관능의 최고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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