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아틀라스, 아틀란티스, 그리고 샤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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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아틀라스, 아틀란티스, 그리고 샤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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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르미타지의 아틀라스 출입구에서 본 거인상. 조성관 작가 제공

집 근처 산 아래에 공터가 있었다. 앞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여러 루트 중 하나다. 인적이 드문 오솔길이다 보니 종종 산짐승과 조우하기도 한다. 한번은 쓰러진 고목에 고개를 박고 정신없이 벌레를 파먹던 꼬리 긴 산짐승과 눈빛을 마주친 적도 있다. 눈이 소복이 내린 어느 날 이 길을 혼자 걷다가 산짐승 발자국을 만나 외롭지 않게 내려온 적도 있다.

그곳에 얼마 전부터 상가 건물 공사가 진행 중이다. 터 파기 공사가 개시된 이후 나는 산에 올라갔다가 일부러 그쪽으로 코스를 잡는다. 야산에서 공사 현장을 내려다보기 위해서다. 현장은 변화무쌍 그 자체다.

모든 게 신기하기만 했다. 토목 공사에 문외한인 나의 눈을 휘둥그레한 장비가 나타났다. 그 장비는 30m 높이의 거대한 쇠기둥이 지면과 직각으로 세워져 있었다. 저게 뭐하는 걸까? 얼핏 봐서는 땅에 구멍을 파는 장비 같았다.

쇠기둥을 조종하는 차체에 '아틀라스 코프코'(Atlas copco)라고 쓰여있는 게 눈길을 끌었다. '아틀라스'를 회사명으로 사용했다는 게 호기심을 자극했다. 저건 '아틀라스'에 관한 이야기를 쓰라는 계시가 아닐까.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난 '아틀라스'가 오버랩되었다.

저 회사는 어떤 회사일까. '100년 넘은 스웨덴 공기압축설비 업체' '공기압축기 시장 전 세계 1위'…. 기사 몇 개를 읽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층 건물을 지으려면 기초공사 단계에서 아틀라스 코프코의 중장비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겠구나.

 

 

아틀라스 지도. 조성관 작가 제공

 


Atlas of the World

나는 세계 지도책을 보는 걸 좋아한다. 지도책을 펼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어려서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학생 때 제일 재미있었던 과목이 세계지리였다. 학창 시절에는 세계 지리부도에 의존했지만 언제부턴가 이게 성에 차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 캐나다 토론토에 머물 때, 세계지도책을 45달러에 샀다. 225쪽 짜리 지도책의 이름은 '스튜던트 아틀라스 오브 더 월드'(Student Atlas of the World). 우리나라의 경우 강원도 삼척까지 표기되어 있었다.

기독교 문명권에서 발행되는 세계 지도책의 경우 대부분 '아틀라스'가 맨 앞에 들어간다. 아틀라스에는 '지도의 묶음'이라는 뜻도 있다. 아틀라스에 어떤 경위로 지도의 묶음이라는 의미가 생성되었을까.

국어사전은 아틀라스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 신(神). 프로메테우스의 형제로, 천계(天戒)를 어지럽혀 그 죄로 제우스에게 하늘을 두 어깨로 메는 벌을 받았다.'

천체(天體)를 어깨에 메고 있는 거인 신 아틀라스. 지도 묶음을 아틀라스라고 부르게 된 것은 여기서 연유한다.

고대 그리스의 세계관에서 탄생한 아틀라스 신화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국어사전의 정의와 비슷하다. 에게해와 인접한 지중해가 세계의 전부라고 믿었던 고대 그리스인들은 지중해 서쪽 끝을 세계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 서쪽 끝에 아틀라스가 하늘을 어깨로 받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페르세우스가 나타나 메두사의 머리를 들어 보이면서 아틀라스가 바위산, 산맥으로 변해버렸다. 산맥의 서쪽 너머의 바다를 아틀란티코스(Atlanticos)라 불렀고, 여기서 파생된 것이 아틀란틱 오션(Atlantic Ocean·대서양)이다.

 

 

 

 

아틀란티스 제국과 그 세력 범위. 이그나티우스 도넬리의 1882년 작 '아틀란티스-아주 오래된 세계'에 삽입된 지도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천재지변으로 아틀란티스가 바닷속으로'

다른 하나는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대화편의 '크리티아스'와 '티마이오스'에 나온다. 플라톤은 여기서 아틀라스와 아틀란티스(Atlantis)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한다. 그리스 신화의 그것과는 차이를 보인다.

그리스인들은 지중해 서쪽 끝의 해협을 '헤라클레스의 기둥'(지브롤터 해협)으로 불렸다. 헤라클레스 기둥 서쪽에, 포세이돈 소유의 커다란 섬이 있는데 소아시아와 북아프리카를 합쳐놓은 크기다. 이 섬은 땅이 비옥해 과실이 풍성했고, 지하자원이 풍부했다. 포세이돈은 이 섬의 처녀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가 아틀라스다. 아틀라스는 이 섬의 왕이 되었고 그때부터 섬은 아틀란티스로 불린다.

아틀란티스는 모든 것이 풍족한 지상낙원이었다. 어느 순간 폭군이 등장하면서 백성들이 타락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천재지변이 일어나면서 아틀란티스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사라진다.

"격렬한 지진과 해일이 있었다. 끔찍한 낮과 밤이 왔는데…아틀란티스는…바다 아래로 사라졌다. 섬이 가라앉을 때 휘몰아친 진흙 너울 때문에…그때는 아무도 바다를 항해할 수 없었으며…그 이후로는 이 섬을 찾을 수도 없었다…."

아틀란티스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미스터리며,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상상력의 보고다. 서양에서 그리스·로마신화와 성경을 제외하고 아틀란티스만큼 오랜 세월 스토리텔링의 원천이 된 게 또 있을까.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 펼쳐진 대항해시대. 탐험가들의 머릿속에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함께 아틀란티스의 전설이 들어차 있었다. 대서양에 어딘가에 사라진 대륙이 있다고 했는데···. 카리브해의 네덜란드령 앤틸리스(Antilles) 제도는 아틀란티스에서 나온 지명이다.

서양에는 '아틀란티스 학'이라는 분야가 존재하고, 아틀란티스 학자들이 수두룩하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1627년 '새로운 아틀란티스'라는 유토피아 소설을 썼고, 현재까지 5000여 종에 달하는 아틀란티스 관련 책들이 세상에 나왔다.

이 중 최고로 평가받는 책이 1882년에 나온 이그나티우스 도넬리의 '아틀란티스'다. 이 책은 아틀란티스의 실재파(實在派)들의 경전(經典)이다. 이 책에 따르면 지구상의 고대문명은 아틀란티스의 영향을 받았고, 세계 각지의 신화에 등장하는 신(神)과 이상향 전설은 모두 아틀란티스에서 파생되었다.

아틀란티스에 관한 논쟁이 가장 뜨거웠던 시기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인 20세기 초. 일부 연구자들이 아틀란티스는 가공의 섬이라는 결론을 내리자 아틀란티스 실재파(實在派)들은 과학적인 반증을 찾아 나섰다. 이들이 아틀란티스가 가라앉은 지역으로 지목한 곳이 화산섬으로 이뤄진 아조레스 제도, 마데이라 제도, 카나리아 제도 지역이다. 2006년에 국내에 번역된 앤드루 콜린스의 대작 '아틀란티스로 가는 길'(Gateway to Atlantis)은 아틀란티스가 실재했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이런 논란 자체가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아틀란티스라는 명사에는 어떤 탐험의 기운이 달무리처럼 어려 있다. 미항공우주국 NASA가 우주왕복선 이름을 아틀란티스라고 명명한 배경이다.

아틀란티스는 영화의 소재로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다. '아틀란티스 사라진 땅'(1961)이 그런 영화다. 21세기 들어서도 아틀란티스 이야기는 여전히 귀를 솔깃하게 만든다. 미국 영화 '하트 인 아틀란티스'(2001), 영화 '아틀란티스'(2019)….

아틀란티스 이야기는 특히 애니메이션 제작사에게 매력적이다. 실사영화로는 불가능한 상상을 애니메이션으로 마음대로 구현할 수 있어서다. '아틀란티스: 잃어버린 제국'(2001), '스폰지밥의 아틀란티스'(2009), '저스티스 리그: 아틀란티스의 왕좌'(2015)….

 

 

 

 

샤이니 7집 아틀란티스

 


대중음악도 예외가 아니다. 스코틀랜드의 가수 겸 작곡가 도노반이 1968년에 같은 이름으로 발표해 세계적으로 히트했다. 아틀란티스 전설을 그대로 노랫말로 축약했다. 장년층은 후렴구를 들어보면 "아, 이 노래~"할 것이다.

아틀란티스 이야기는 오래전 기독교 문명권의 경계를 넘어섰다. 가수 보아(BoA)도 18년 전에 '아틀란티스의 소녀'를 불렀고, 최근에는 아이돌 그룹 샤이니가 '아틀란티스'라는 신곡을 발표했다. '아틀란티스'의 가사가 놀랍다.

'미지의 그 영역을 찾게 한순간 / 묻혔던 감각들을 깨워낸 듯한 그곳은 / 중력보다 강하게 또 아주 깊숙하게 / 헤어나지 못할 끝까지 끌어당겨 날 / It's like we're underwater / 점점 깊어져 가 / 밀려오는 널 품에 안을 게 / 내 숨을 가져가 / My love goes deep deep deep / 깊어진 Your ocean / 짙어진 emotion….'

사랑을 바닷속으로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에 은유했다. 사랑의 깊이를 아틀란티스를 삼켜버린 끝없는 심연(深淵)에 비유한다. 들을 때마다 노랫말과 멜로디가 귀에 착착 감긴다. 작사가의 감각과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에르미타지 박물관의 '아틀라스'

다시 아틀라스로 돌아가 본다. 유럽 여행에는 여러 가지 키워드가 있다. 그중 하나가 건축의 관점에서 유럽 도시들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아르누보 등. 건축에 대한 상식을 조금만 알고 있으면 눈이 즐겁다. 건축물의 장식과 상징에 그리스신화 속 인물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그중 하나가 아틀라스다. 신전이나 테라스를 아틀라스가 기둥으로 떠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드물게는 창문틀을 아틀라스가 힘겹게 이고 있는 장식도 보인다. '키스'가 영구 전시 중인 빈 벨베데레 궁전 로비에는 안쓰러운 아틀라스 기둥들이 눈에 띈다.

아틀라스 기둥은 홀수로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기둥은 짝수다. 2, 4, 6, 8…. 복수형 아틀라스 기둥을 아틀란테스(Atlantes)라고 한다. 남상주(男像柱). 아틀란테스의 백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궁전광장에 서서 겨울궁전을 바라보았을 때 주출입구 오른쪽에 소(小)에르미타주와 신(新)에르미타주가 보인다. 신에르미타주의 현관이 우리의 목적지. 니콜라이 1세 황제부터 1917년 볼셰비키혁명 직후까지 사용된 출입구다.

저주받은 아틀라스들이 대리석으로 조각되었다. 누구나 이곳에 오면 까치발을 딛고 손을 치켜 올려 거인 신과 인간인 자신을 견주어본다. 거인 신의 키는 자그마치 5m에 이른다. 거인 신의 위용은 인간의 왜소함을 실감케 한다. 과연 지구를 들고 있을 만하구나.

 

 

 

신에르미타지의 아틀라스출입구 전경. 조성관 작가 제공

 


사람들은 거인 신의 숫자를 세어본다. 무려 10개다. 조각상의 예술성은 어떤가. 경탄이 터져 나온다. 손을 뻗쳐 간신히 거인의 종아리를 만져본다. 힘줄이 씰룩거리는 것 같다. 당당하게 운명을 받아들이는 아틀라스들! 아틀라스 기둥 하면 왜 에르미타지를 말하는지 저절로 설명된다.

에르미타지 안에는 다빈치, 라파엘로, 렘브란트, 마티스, 고흐, 피카소, 마티스 등의 명화들이 수두룩하다. 몇 날 며칠을 작정하고 봐야만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에르미타지가 소장 중인 그 어떤 작품도 스케일에서 아틀란테스를 능가하는 것은 찾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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