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쇄史 다시 쓰나…한글 포함 600년 전 '금속활자' 종로서 대량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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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인쇄史 다시 쓰나…한글 포함 600년 전 '금속활자' 종로서 대량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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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본관 강당에서 열린 서울 공평동 유적 출토 중요유물 언론공개회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 등이 공개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과 탑골공원 사이에 있는 약 3770만㎡(1140평) 부지에서 조선 전기에 제작된 한글 및 한문 금속활자 1600여점과 금속 유물 한무더기가 항아리 속에 매납된 채 발견됐다.

특히 이번에 공개된 금속활자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표기가 반영된 가장 이른 시기의 한글 금속활자다.

또한 금속활자 중 세종 갑인자(1434년)로 추정되는 활자가 다량 확인된 점은 유례없는 성과다. 추후 '갑인자'로 확인되면 서양 최초로 금속활자와 인쇄술을 개발한 구텐베르크(1450년경) 보다 이른 시기의 인쇄본과 금속활자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29일 문화재청과 수도문물연구원은 고궁박물관에서 '서울 공평구역 제15⋅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 내 유적(나 지역)'에서 출토한 조선 전기에 제작된 금속활자 1600여 점, 세종~중종 때 제작된 물시계의 주전, 세종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 1점, 중종~선조 때 만들어진 총통류 8점, 동종 1점을 공개했다.

조사지역은 현재 종로2가 사거리 북서쪽으로 조선 한양도성의 중심부였다. 조선 전기까지는 한성부 중부 견평방에 속했고, 주변에 관청인 의금부와 전의감을 비롯해 왕실의 궁가인 순화궁, 죽동궁 등이 있고, 남쪽으로는 상업시설인 시전행랑이 있었던 운종가가 있었다.

금속활자를 비롯해 이번에 발굴된 유물은 조선 전기부터 근대에 걸쳐 6개의 문화층이 형성돼 있었다. 금속활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유물들은 잘게 잘라 파편으로 만들어 도기항아리 안과 옆에 묻어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활자들은 대체로 온전했지만 불에 녹아 서로 엉겨 붙은 것들도 일부 확인됐다. 이들의 사용, 폐기 시점은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 중 만력(萬曆) 무자(戊子)년에 제작된 소승자총이 있어 1588년 이후에 묻혔다가 다시 활용되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본관 강당에서 열린 서울 공평동 유적 출토 중요유물 언론공개회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가 담겨 있던 항아리 등이 공개되고 있다.

 

 


훈민정음 창제 시기인 15세기에 한정돼 사용된 동국정운식 표기법을 쓴 금속활자가 실물로 확인된 점과 한글 금속활자를 구성하던 다양한 크기의 활자가 모두 출토된 점 등은 최초의 사례이다.

동국정운식은 세종의 명으로 신숙주, 박팽년 등이 조선한자음을 바로잡기 위해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표준음에 관한 운서(韻書), 중국의 한자음을 표기하기 위해 사용된 'ㅭ', 'ㆆ', 'ㅸ' 등의 글자다.

백두현 경북대 교수는 "발굴된 활자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가 발견됐다는 것"이라며 "지금까지 발견된 한글 금속활자로서 가장 오래된 것이 틀림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한글 금속활자들은 큰 자부터 가장 작은 자까지 4가지 종류의 크기가 발견됐으며 두 개 글자를 붙인 '연주활자'도 있었다"며 "그중 '~이나' '~하고' '~하며' 등의 연주활자는 한문을 공부할 때 반복적으로 많이 쓰이는 한글 토씨를 한 덩어리로 만들어서 조판에서 이 같은 노력을 절약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조선 금속활자인 세조 '을해자'(1455년)보다 20년 이른 세종 '갑인자'(1434년) 로 추정되는 활자가 다량 확인됐다. 구텐베르크가 1440년대 서양 최초로 금속활자와 인쇄술을 개발할 무렵 제작한 것으로 판단되는 유물이 포함됐다.

이승철 유네스코국제기록센터 팀장은 "규장각에 유사한 활자가 100여개 있었는데, 미확인 금속활자라고 판명하고 연구가 중단된 상태였다"며 "미확인 금속활자가 이번에 출토된 유물과 비슷해서 미확인 활자도 갑인자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본관 강당에서 열린 서울 공평동 유적 출토 중요유물 언론공개회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 등이 공개되고 있다. 

 

 


이번에 발굴된 도기항아리에서는 금속활자와 함께 세종~중종 때 제작된 자동 물시계의 부속품인 '주전'으로 보이는 동제품들도 잘게 잘린 상태로 나왔다.

동제품은 동판과 구슬방출기구로 구분된다. 동판에는 여러 원형 구멍과 '一箭'(일전)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구슬방출기구는 원통형 동제품의 양쪽에 각각 걸쇠와 은행잎 형태의 갈고리가 결합돼 있다.

이러한 형태는 '세종실록'에서 작은 구슬을 저장했다 방출해 자동물시계의 '시보'(時報)장치를 작동시키는 장치인 주전의 기록과 일치한다.

활자가 담겼던 항아리 옆에서는 주·야간의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가 출토됐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1437년 세종은 일성정시의 4개를 만든 것으로 기록됐다. 현존하는 자료 없이 기록으로만 전해져오던 세종 대의 과학기술의 그 실체를 확인한 것으로 의미가 크다.

함께 발견된 소형화기인 총통은 승자총통 1점, 소승자총통 7점으로 총 8점이다. 조사 결과, 최상부에서 확인되었고, 완형의 총통을 고의로 절단한 후 묻은 것으로 보인다. 복원된 크기는 대략 50~60㎝m다. 총통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계미년 승자총통(1583년)과 만력 무자년 소승자총통(1588년)으로 추정됐다.

오경택 수도문물연구원장은 "이번에 발굴한 유물들은 성분 분석을 못 했지만 노란색을 띄고 있어 순동일 것으로 예상된다"며 "조선 시대에 동은 일반인들이 접할 수 없는 유물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유물이 발굴된 지역은 중인, 관악의 아속들이 주로 거주했던 것으로 일반 집 창고로 추정되는 곳에 매립돼 있었다"며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급박한 상황에서 피난을 가야 했던 이들이 다시 찾아 오기 위해 바닥에 묻어놓고 돌아오지 못한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출토 유물들은 현재 1차 정리만 마친 상태로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관해 안전하게 보관 중이다. 문화재청은 "보존처리와 분석과정을 거쳐 각 분야별 연구가 진행된다면, 이를 통해 조선 시대 전기, 더 나아가 세종 연간의 과학기술에 대해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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