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엘라의 畵音] 태양왕 루이14세의 총애를 받은 예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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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라의 畵音] 태양왕 루이14세의 총애를 받은 예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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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르브룅의 '베르사이유 천정화'


태양의 왕 루이 14세가 자신의 권력을 자랑하고 절대 왕정을 확고히 하기 위해 만든 베르사이유. 그리고 베르사이유를 대표하는 거울의 방. 거울의 방은 베르사이유 궁전 본관 2층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전쟁의 방'과 '평화의 방'사이를 잇는 곳이기도 한 이곳은 궁정의 중요한 행사나 축제 등이 열렸던 곳이다. 또한 외국에서 온 사신들을 접대하는 곳으로도 사용됐다. 태양의 왕이라는 호칭을 강조하듯 이 방에는 거울과 대칭을 이루는 창문이 정원을 향해 나있어 창문을 통해 태양이 들어오도록 설계됐다. 거울의 방엔 정원을 향한 17개의 창문과 17개의 거울이 배치됐다. 숫자17은 루이14세가 친정을 한 17년을 기념하는 숫자이기도 하다. 당시 엄청난 고가의 거울로 방 전체를 가득 채운 것은 그 자체로 위화감을 조성했을 수 있다. 이곳의 장식을 맡은 화가는 루이 14세의 궁정화가이자 베르사이유의 미술 전반을 기획하고 감독했던 샤를 르브룅(Charles Le Brun, 1619~1690)이다.

르브룅은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조각가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타고난 재능으로 미술계에 두각을 나타냈고 니콜라 푸생의 제자가 됐다. 르브룅은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교화를 맡아 제작하기도 했다. 또한 여러 대저택의 장식을 맡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베르사이유의 원형이 된 니콜라 푸케의 보르비콩트 성이었다. 화려함의 극치였던 이 성을 본 루이14세는 이때 건축을 맡았던 루이 르보와 조경사 앙드레 르노트르 그리고 르브룅을 불러 베르사이유 궁전을 만들게 했다. (루이14세의 재무상이었던 푸케는 이 성으로 인해 정부의 돈을 횡령했다는 의심을 사 루이14세에 의해 감옥에 갇히게 된다.)

푸케의 뒤를 이어 재무상이 된 콜베르의 후원을 받아 르브룅은 1662년, 루이 14세의 궁정화가가 된다. 그리고 그는 베르사이유의 하이라이트인 거울의 방에 루이 14세의 업적을 그린 천정화를 그린다. 천정화는 루이 14세가 친정을 시작한 1661년부터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전쟁을 종결시킨 니메그 평화조약까지의 업적을 그리고 있다. 마치 종교화나 역사화, 또는 그리스 신화처럼 그려진 이 작품들을 통해 루이14세를 그야말로 신격화 하고 있다. 이 그림들을 그려낸 르브룅을 루이14세는 "가장 위대한 예술가"라 불렀다.

 

 

 

장 밥티스트 륄리 (Jean Baptiste Lully, 1632~1687)1

 

 

음악에서는 장 밥티스트 륄리(Jean Baptiste Lully, 1632~1687)가 루이14세의 총애를 받은 인물로 유명하다. 작곡가이자 무용수이기도 했던 륄리는 1653년경 루이14세에 고용됐다. 발레를 좋아해 직접 무대에서 공연을 즐겼던 루이 14세. 륄리는 루이14세와 함께 무대에 서기도 하며 왕을 위한 발레 음악을 작곡했다. 그리고 이내 왕실전속 작곡가가 되어 프랑스 왕실의 위풍당당함을 뽐내는 작곡을 한다. 륄리의 음악은 기품 있고 당당하며 생동감 있는 작풍으로 프랑스 바로크 음악을 대표한다. 그는 희극 작가인 몰리에르와 함께 연극과 발레를 결합한 '코미디 발레'라는 장르를 만들었고 당시 주류를 이뤘던 이탈리아 오페라 스타일을 변형, 프랑스어에 적합한 프랑스 서정비극이라는 오페라 장르를 만들었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방앗간 집에서 태어난 륄리가 프랑스 왕의 총애를 받아 프랑스 음악을 확립했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사실이다. 륄리는 승승장구했다. 왕명에 의해 프랑스 파리 음악 공연 독점권마저 보유했고 결국 왕의 비서관으로 임명되며 귀족의 지위로까지 승진하게 된다.

지팡이로 지휘했다고 알려진 륄리는 루이14세가 병상에서 회복된 것을 축하하기 위한 음악회에서 '테데움'을 연주하다 뽀족한 지팡이 끝으로 자신의 발가락을 찧는 사고를 당했다. 그는 발가락 절단을 권고 받았으나 거부했고 결국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왕의, 왕에 의한, 왕을 위한 예술가들. 왕을 기쁘게 하고 왕을 빛나게 하기 위해 작품을 만들어 낸 두 예술가. 이들의 예술은 종종 권력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곤 한다. 하지만 프랑스를 빛나게 한 예술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업적이 대단한 것을 부인하긴 힘들어 보인다.

사실, 많은 예술가들은 누군가의 고용인으로 일했다. 이들은 주문을 받아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었다. 예술을 포함한 많은 일들은 사회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사회에서 살아가며 추구하는 많은 가치들이 있다. 돈, 명예, 권력, 도덕, 질서, 정직, 관계, 지혜, 전통, 자유, 평등, 평화, 건강 등 아직도 모든 예술가가 완벽히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고 얘기하긴 어렵다. 어쩌면 자본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권력이 정도의 차이를 두고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지도. 왕을 위한 아티스트들을 떠올려본다. 예술을 향한 그들의 열정은 자유로웠을까? 아니면 고통이었을까? 지금의 우리는 또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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