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아문센은 어떻게 북서항로를 뚫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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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아문센은 어떻게 북서항로를 뚫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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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이 만든 순록 모피 옷을 입고 있는 로알 아문센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북극해와 관련된 뉴스가 심심찮게 외신을 타고 국내에 전해진다.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지만 남극은 대륙이고, 북극은 바다다. 그러니까 북극점(90도)은 바다에 존재한다. 북극점 90도에서 66도에 이르는 지역을 북극권(Arctic circle)이라 부른다.

요즈음 북극해가 뉴스를 타는 것은 안보적 이유 때문이다. 지리적으로 북극에 가장 근접해 있는 국가는 러시아. 유라시아대륙에 걸쳐 있는 러시아 영토의 상당 부분이 북극권 안에 있다. 그다음이 캐나다, 미국, 그린란드(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미국과 러시아는 지금까지 북극권에서 군사적 우위를 놓고 경쟁해왔다. 러시아 해군이 올해 가을 북극에서 핵추진 잠수함을 동원한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한다. 미국도 겨울 군사훈련을 준비 중이다.

북극해가 최근 새삼 주목을 받는 이유는 중국 때문이다. 북극권과는 한참 떨어져 있는 중국이 왜? 중국이 북극 상공을 지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견제할 목적으로 정보 수집에 나서면서다. 중국의 무분별한 팽창주의가 차가운 북극해마저 뜨겁게 만드는 것이다.

북극해는 1년 중 여름철인 2~3개월을 제외하고는 얼음으로 뒤덮인다. 지금에야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주요 국가가 쇄빙선을 보유하고 있어 얼어붙은 북극 바다가 겁날 것이 없다.

중국으로 가는 지름길을 찾아라!

북극해는 인류 역사 이래 관심권 밖에 있었다. 그런 얼음 바다가 500년 전 갑자기 유럽 군주들의 관심권 안으로 쑥 들어온다. 대항해시대의 여진이 북극에까지 미친 결과다.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도착에 이은 1521년 마젤란의 세계 일주 성공. 유럽 세계는 신대륙 너머에 또 다른 대양이 있다는 걸 알았다. 마젤란이 통과한 남미 끝자락 좁은 해협이 마젤란해협으로 명명되었고, 해협에 면한 작은 마을 푼타아레나스가 선원들로 북적거리며 번성했다.

그러나 마젤란해협과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중국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 멀고도 험했다. 시간과 안전을 전혀 보장할 수 없었다. 최단 루트가 없을까?

유럽 군주들은 중국에 이르는 지름길을 찾으려고 눈에 불을 켰다. 대서양과 인도양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독무대. 그때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의 눈에 들어온 것이 북극해였다. 얼음이 녹는 여름철 북극해를 통과해 중국으로 가는 항로를 개척할 수만 있다면. 껄끄러운 스페인·포르투갈 선박과 마주치지 않아도 되었다.

탐험가들은 두 가지 항로를 생각한다. 하나는 북아메리카 대륙을 돌아 북서쪽(Northwest)으로 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베리아 해안을 따라 북동쪽(Northeast)으로 가는 항로다.

먼저 북극권의 지명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허드슨 해협, 허드슨 만, 데이비스 해협, 배핀 섬, 배핀 만, 데이비스 해협, 프로비셔 만, 바렌츠 해, 그조아 헤이븐. 현재 여행이 가능한 북극권 지역은 캐나다와 미국이다. 이중 캐나다 북극권 누나부트 테러토리(준주)가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나는 2003년 4월 보름 동안 캐나다 북극을 취재한 경험이 있다. 캐나다에는 원주민 자치주인 준주(準州)가 세 곳 있는데 누나부트, 노스웨스트, 유콘이다. 이중 알래스카와 이웃한 유콘 준주는 오로라 체험으로 제법 알려졌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4월의 허드슨 해협. 조성관 작가 제공

 

 


캐나다 북극에서 가장 큰 섬이 배핀섬이다. 꼭 송충이가 머리를 살짝 든 채 기어가는 모습처럼 보인다. 누나부트 준주의 주도는 이캘루이트. 배핀섬에 있는 이캘루이트로 가려면 오타와에서 비행기를 타야 한다. 북쪽으로 항로를 잡은 여객기가 한 시간쯤 지나면 허드슨 해협 상공에 다다른다.

4월 중순 하늘에서 내려다본 허드슨 해협은 얼음 바다였다. 얼음 바다가 가뭄에 바닥을 드러낸 저수지처럼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해협의 얼음바다를 내려다보면서 부빙(浮氷)에 갇힌다는 말을 비로소 실감했다. 그것은 공포였다.

7월이 되어 얼음이 어느 정도 녹아야 부빙 사이로 자연적인 뱃길이 난다. 7~9월 이곳에 들어와 예정한 시간에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으면 얼음에 갇힌다. 만일 항로를 잘못 택해 시간이 지체될 경우 여지없이 부빙에 결박된다. 그것은 곧 죽음이었다.

 

 

 

 

 

얼음으로 뒤덮인 4월의 프로비셔만. 조성관 작가 제공

 

 


탐험가들의 무덤 Northwest Passage

이캘루이트는 골프코스처럼 길쭉한 프로비셔 만 안쪽에 있다. 우리가 북극 탐험과 관련 가장 먼저 만나야 하는 사람이 북서항로(Northwest Passage)를 찾아 나선 영국 탐험가 마틴 프로비셔(1535~1594)다. 세 척을 이끌고 탐험에 나섰지만 두 척을 부빙에 잃고 간신히 프로비셔만에 도착했다. 그는 이 만을 북서항로의 입구라고 생각했다. 훗날, 이 만은 그의 이름을 따 프로비셔 만이라고 이름 붙였다. 프로비셔 만은 4~5월에도 꽁꽁 얼어붙어 있다. 7월이 되어야 얼음이 녹아 화물선이 들어온다.

그 다음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항해가이면서 수로측량사인 존 데이비스(1550~1605). 위도를 정확히 측정해주는 4분의(儀) 발명자다. 세 차례의 탐험 끝에 그린란드 서쪽과 캐나다 북극 군도 사이에 해협을 발견한다. 그는 1585년 여름 이 해협의 북위 72도까지 올라갔다. 부빙군(浮氷群)에 막혀 더이상 서쪽으로 항해하지 못한다. 그곳은 데이비스 해협이 된다.

이번에는 탐험가 헨리 허드슨(1565~1611). 그의 북서항로 탐험에는 네덜란드와 영국이 차례로 후원한다. 허드슨은 영국 머스코비 회사 소속으로 1607년과 1608년 북동항로를 찾는 탐험에 나선다. 두 번의 항해로 그는 그린란드 동쪽 섬을 발견하고 러시아의 바렌츠 해협을 탐험한다. 그러나 부빙에 막혀 더 이상의 북동항로 탐사를 접는다.

 

 

 

 

북극의 빙하에 갇힌 탐험선을 그린 상상도 / 사진출처 = 시공디스커버리

 


1610년, 그는 북서항로 탐사에 나선다. 1610~1611년 허드슨 해협을 지나 허드슨만을 발견한다. 허드슨만 남쪽에 있는 제임스만에 도착해 그곳에서 겨울을 나는 과정에서 선상 반란이 일어나면서 그는 아들, 선원 7명과 함께 작은 보트에 남겨져 동사(凍死)한다.

윌리엄 배핀(1584~1622). 영국의 지도제작자이자 항해가인 배핀은 첫 번째 탐험에서 북위 70도 45분까지 진출했고, 현재의 배핀만 전체를 지도로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두 번째 탐험에 나서 엘스미어 해안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배핀은 두 번째 탐험을 마치고 북서항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를 보고서로 제출한다. 동양으로 가는 '북서항로는 없다'는 통념이 유럽 사회에 퍼졌고, 이후 200년 동안 북서항로를 찾아 나선 사람은 없었다.

극지방 탐험에 다시 불을 지핀 나라는 영국. 나폴레옹 전쟁(1803~1815) 직후 영국은 대영제국 해군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국가적 목표가 절실했다. 이때 대두된 것이 북극과 남극의 탐험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트라팔가 해전 참전 경험자인 존 프랭클린(1786~1847). 그는 북극 탐험과 관련 영웅적 스토리텔링의 주인공이 된다.

허드슨만부터 해안선을 따라 북서항로를 탐사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프랭클린은 1819~1822년, 1825년 두 차례 탐험으로 북서항로 개척에 자신감을 가졌다. 철저한 준비를 마친 그는 1845년 여름, 탐험선 두 척에 선원 129명을 태우고 북서항로 개척에 나섰다. 그러나 아무도 돌아온 사람이 없었다. 실종! 해군성은 프랭클린 탐험대의 소식을 알려지는 사람에게 2만파운드의 상금을 지급한다고 공표했고 10여 년 동안 40척의 선박이 흔적을 찾아 나섰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몇 년이 또 흘렀고 프랭클린 탐험대는 잊혀갔다. 하지만 아내 제인은 남편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영국민을 대상 모금 운동을 전개했고, 국민적 호응을 받아 매클린톡 선장이 지휘하는 탐험대를 띄울 수 있었다.

 

 

 

 

1903년 겨울 킹윌리엄섬에서 이누이트 원주민과 지내는 아문센 / 사진출처 = 시공디스커버리

 

 



1859년 봄, 매클린톡은 킹윌리엄 섬의 돌무덤에서 프랭클린 탐험대원의 기록이 담긴 양철통을 발견한다. 이 기록에는 1845년부터 1848년까지의 항적(航跡)과 선원들이 맞은 최후의 순간까지 상세하게 담겨 있었다. 탐험대는 빙하와 부빙에 갇혀 죽어갔다. 프랭클린은 1847년 6월 11일 추위와 굶주림에 눈을 감았다. 이 기록물은 나중에 영국에서 책으로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된다.

수백년 간 탐험가를 매혹시켰던 미지의 북서항로! 이 항로를 처음 통과한 사람은 노르웨이 탐험가 로알 아문센(1872~1928)이다. 1903년 그는 3년치 식량을 준비하고 그조아(Gjoa)호를 타고 북서항로를 찾아 나섰다. 그는 킹윌리엄 섬에 도착해 원주민들과 지내며 1903년과 1904년 겨울을 났다. 그는 현지인들의 생활풍습을 배우며 북극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해 갔다. 겨울을 두 번 난 그는 1905년 8월 13일 얼음이 녹자 그조아호를 타고 서쪽으로 항해한다. 마침내 알래스카 서쪽 끝, 베링해를 통과했다. 인류 최초로 북서항로를 통과한 사람이라는 영광은 아문센에게 돌아갔다.

아문센은 유럽인이 만든 가장 따뜻한 옷이 원주민이 만든 순록 모피 옷보다 따뜻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문센은 앞선 탐험가들의 전철을 밟지 않고 철저하게 현지 관습대로 행동했고, 마침내 겨울을 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북서항로를 개척해 태평양에 이르렀다.

 

 

 

 

 

8월의 캐나다 북극 북서항로. 허드슨 만과 허드슨 해협은 얼음이 다 녹은 모습이다.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라'(Think Gobally, Act Locally)

1992년 리우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가 선정한 구호다. TGAL는 글로벌기업의 마케팅 전략으로 흔히 차용된다.

TGAL는 목숨을 건 극지 탐험에서 이미 아문센에 의해 증명되었다. 탐험가들의 목숨을 앗아간 북서항로의 얼음이 기후변화로 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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