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왜 딜라일라는 살해당해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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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왜 딜라일라는 살해당해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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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존스 데뷔 앨범의 타이틀곡 '딜라일라'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지난 10월7일~1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삼손과 데릴라'라는 오페라가 무대에 올려졌다. 이 오페라는 전국 주요 도시를 돌며 공연중이다.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는 프랑스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가 작곡한 낭만주의 오페라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원작은 구약 성서에 나오는 '삼손과 데릴라' 이야기지만 한국 무대에서는 현대적으로 해석해 1930년대 나치 독일 시대가 배경이다. 삼손은 레지스탕스 지도자, 데릴라는 나치의 지령을 받고 유대인 사회에 침투한 스파이.

프랑스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1835~1921). 생상스가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피겨스케이트 선수 김연아를 통해서다. 김연아는 2008년 피겨세계선수권 싱글 쇼트프로그램에 출전하면서 연기 음악으로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를 선정했고, 세계신기록을 새로 썼다.

생상스는 현재 파리 몽파르나스 공원묘지에 영면 중이다. 나는 2015년 '파리가 사랑한 천재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몽파르나스 공원묘지에서 여러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그때 다른 때 같았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생상스 가족묘를 일부러 들렀다. '죽음의 무도'를 작곡한 음악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해서다.

 

 

파리 몽파르나스묘지의 생상스 가족묘. 조성관 작가 제공

 

 


나는 생상스의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를 본 적이 없다. 하지만 1949년에 나온 할리우드 영화 '삼손과 데릴라'는 10대 시절 두어번 봤다. 아무 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 약을 탄 술에 곯아떨어진 삼손의 머리칼을 싹둑 잘라버려 힘을 뺏아버린 데릴라를 얼마나 증오했던지. 또 사악한 애인에게 속아 힘의 원천을 잃고 평범한 남자가 되어버린 삼손이 얼마나 안타깝던지.

이 영화의 주인공은 빅터 마추(삼손 역)와 헤디 라마(데릴라 역). 돌이켜 보면, 이 영화는 내게 여성의 팜므파탈성(性)을 어렴풋하게 나마 심어준 최초의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이 구약 성서 이야기는 1984년과 1996년에도 영화로 만들어졌지만 어쩐 일인지 나는 두 영화를 전혀 알지 못한다.

'서양 미술사는 그리스의 아들'이라고 갈파한 이는 역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다. 나는 여기에 세글자를 덧붙인다. '서양 미술사는 그리스와 성경의 아들이다.' 20세기까지 수많은 서양 화가들이 작품의 모티브를 그리스신화와 성경에서 가져다 썼다.

'키스'의 화가 구스타브 클림트를 예로 들어 보자. 클림트와 렘브란트를 비롯한 여러 화가들이 소재로 삼은 '다나에'(Danae)는 그리스 신화에서 차용했다. 어떤 왕이 신탁을 받는다. 자신의 딸이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이 왕을 살해할 것이다. 두려움을 느낀 왕은 딸이 남자를 만나지 못하게 청동 감옥에 가둔다. 그러자 황금비로 변신한 제우스가 창살 틈으로 들어와 다나에를 겁탈한다는 이야기다.

클림트도 두 점이나 남긴 '유디트'(Udith)는 구약 성서 유디트서(書)에 나오는 이야기다. 적군의 공격으로 왕국이 포위돼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다. 과부 유디트가 왕국을 구하러 단신으로 적진(敵陣)에 들어가 미인계로 적장의 목을 베는 데 성공한다. 얼마나 드라마틱한가.

 

 

 

 

페테르 루벤스의 1609년작 'Samson and Delilah'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삼손과 데릴라' 역시 화가들에게 매력적인 소재였다. 인터넷에서 '삼손과 데릴라' 이미지를 입력하면 루벤스의 그림부터 막스 리버만까지 여러 종의 작품들이 뜬다.

삼손 신화 때문인지는 몰라도 남자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털에 관한 징크스가 있다. 눈썹이나 귓속 혹은 가슴털 중에서 한 가닥 길게 삐져나오는 경우, 남자들은 이를 여간해선 자르지 않는다. 여자들(아내나 딸)은 이걸 보기 싫어한다. "잘라라" "뽑아라" 남자들은 대부분 이 말을 귓등으로 흘려버린다. 왜 그런가. 혹여나 그 털을 뽑거나 잘라서 (삼손의 머리칼처럼) 안좋은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무의식이 작용한 결과다.

과학자·발명가·영화배우 헤디 라마

내가 영화 '삼손과 데릴라'를 기억하는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데릴라 역을 맡은 여배우 헤디 라마(Hedy Lamarr 1913~2000)로 인해서다. 30여년 간 할리우드에서 활약한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계 배우. 히틀러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 헤디 라마의 직업은 과학자이자 발명가였다.

나는 2차세계대전사(史)를 들여다보다가 과학자 헤디 라마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미국에 정착한 헤디 라마는 '주파수 도약'(Frequency Hopping) 시스템을 개발한다. 독일 U보트의 전파교란을 무력화할 수 있는 혁신 기술이 '주파수 도약'이다. 독일이 어뢰의 전파를 방해해 목표점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막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미해군은 라마의 기술을 무시해 채택하지 않았다. 라마의 미모만 탐했을뿐 그녀의 천재성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결과다.

 

 

 

 

헤디 라마와 빅터 마추 주연의 1949년 영화 '삼손과 딜라일라' 포스터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주파수 도약 시스템이 발전해 현재의 와이파이와 블루투스 기술까지 이어졌다. 와이파이와 블루투스의 원천기술자가 헤디 라마다. 영화팬들이 과학자 헤디 라마의 실체를 알게 된 것은 2018년에 나온 다큐멘터리 영화 '밤쉘'(Bombshell)로 인해서다. 그는 현재 오스트리아 빈의 중앙묘지에서 영면중이다.

톰 존스의 1968년 데뷔곡

영국의 팝 가수 톰 존스(Tom Jones 1940~). MZ세대의 부모들은 젊은 시절 탐 존스의 히트곡 몇 소절을 흥얼거리면서 청춘의 터널을 통과했다.

'딜라일라' '대니 보이' '그린 그린 그래스 오브 홈' '킵 온 러닝' '잇스 낫 언유주얼'…. 그의 히트곡은 일일이 열거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다.

그의 데뷔곡이 1968년에 나온 '딜라일라'. 나는 '딜라일라'를 조영남의 번안곡으로 먼저 접했고, 나중에 톰 존스의 원곡을 알게 된 경우다. 톰 존스의 '딜라일라'를 영어로 멋지게 불러보려 카세트 테이프로 반복해 들으며 영어 가사를 외웠던 적도 있다. 회식을 하면 2차는 으레 노래방으로 직행하던 시절 '딜라일라'는 나의 레퍼토리 중 하나였다. 권위주의 시대 조영남이 부른 '딜라일라'는 한때 금지곡으로 묶인 적이 있다. 원곡의 영어 가사 때문이다.

I saw the light on the night that I passed by her window

I saw the flickering shadows of love on her blind (중략)

As she deceived me I watched and went out of my mind.

My my my Delilah

Why why why Delilah (중략)

At break of day when that man drove away I was waiting

I crossed the street to her house and she opened the door

She stood there laughing

I felt the knife in my hand and she laughed no more.

My my my Delilah

Why why why Delilah

So before they come to break down the door

Forgive me Delilah I just couldn't take any more.

딜라일라는 '나'의 여자였다. 하지만 '나'를 속이고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겼다. 배신감에 격분한 '나'는 집 앞에서 밤새 기다리다 이른 아침 집을 찾아간다. 그녀는 문을 열어줬고 나를 보며 웃었다. 순간 '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그녀를 살해한다. 금지곡으로 묶인 이유는 변심한 애인을 살해한다는 노랫말 때문이다.

 

 

 

 

'삼손과 딜라일라'의 한 장면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다시 구약성서에 나오는 유대인 삼손 이야기로 돌아가 본다. 삼손(Samson)은 '딜라일라'(Delilah)를 사랑했다. 딜라일라도 삼손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하지만 그녀의 고백은 진심이 아니었다. 다른 부족의 왕에게 매수되어 자신을 믿은 삼손의 비밀을 알아내는 데 성공한다. 삼손의 머리카락이 그렇게 잘려나간다.

나는 생상스의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렇다면 그 전에는 이 삼손 이야기를 다룬 문학과 음악은 없었을까.

17세기 영국 시인 존 밀턴은 희곡 '투사 삼손'(Samson Agonistes)을 썼다. 이 작품은 삼손이 힘을 잃고 눈까지 멀어 나락으로 떨어져 있다가 겸손을 배워 다시 신의 선택을 받아 전사로 재탄생한다는 내용이다. 18세기 작곡가 핸델은 '투사 삼손'을 원작으로 오페라 '삼손'을 작곡했다. 이렇게 삼손 이야기는 다양한 예술 장르에서 시대에 맞게 여러 형태로 변주되는 중이다.

기독교 문명권에서 오랜 세월 '딜라일라'는 요부(妖婦), 배신한 여자, 사악한 여자의 동의어로 간주되었다. 여러 예술작품에서 그녀의 이름은 악녀로 묘사된다.

영화 자막의 치명적 잘못

여기서 부끄러운 고백을 해야 한다. 나는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삼손의 '데릴라'와 톰 존스의 '딜라일라'가 전혀 다른 인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주 우연히 데릴라와 딜라일라의 스펠링이 Delilah로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동일 인물인데 왜 이렇게 완전히 다르게 불려졌을까.

구약성서는 히브리어로 쓰였다. Delilah는 히브리어다. 히브리어 발음으로 '딜라일라'다. 기독교 문명권 어디에서도 Delilah를 '데릴라'라고 발음하거나 표기하진 않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는 Delilah를 '데릴라'로 부른다. 1949년 영화 'Samson and Delilah'가 한국에서 상영된 것은 6·25전쟁 이후인 1950년대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영화사가 한국어 제목으로 바꾸면서 알파벳대로 '데릴라'로 읽고 표기한 것이다. 혹시 이 영화가 일본에서 먼저 상영되었고, 일본에서 '삼손과 데릴라'라고 표기한 것이 영향을 주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기 전에 혹시나 해서 유튜브로 영화를 다시 봤다. 삼손이 딜라일라를 처음 만나는 장면부터 이름이 나오는 모든 순간에 집중했다.

삼손이 묻는다.

"이름이 뭐요?"

Delilah가 대답한다.

"딜라일라"

그런데 영화 자막은 '데릴라'로 처리됐다. 영화에서 "딜라일라"를 말하는 장면은 여러번 나온다. 그때마다 자막은 '데릴라'다. 뭐 이런 경우가 있나? 기가 찼다.

그 이후부터 삼손하면 그 다음은 자동으로 데릴라가 나왔다. 한번 정보가 잘못 입력된 채로 시간이 흐르게 되면 그것을 바로잡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화석처럼 굳어져 21세기에도 여전히 '삼손과 데릴라'다. 그러니 명민하지 못한 내가 톰 존스의 '딜라일라'와 '데릴라'가 같은 사람인줄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딜라일라'를 열심히 부르면서도 왜 여자가 변심했다고 남자가 칼을 들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변심은 여자만 하나? 이런 야만이 어디 있나? 살인을 저지르고 용서해달라니! 21세기에도 한국에서 결별을 선언한 애인에게 칼을 들이대는 남자들이 버젓이 나오지만.

데릴라와 딜라일라가 동일 인물임을 알게 되면서 비로소 오랜 의문이 풀렸다. 기독교 문명권에서 악녀 딜라일라의 이미지는 여러 형태로 변주되었고, 대중적인 팝송에까지 파고들었다. 톰 존스가 이 노래로 스타가 된 것은 가창력 외에도 '딜라일라'에 대한 복수심을 남자들이 공유했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에서 머리칼을 잘린 삼손이 회한에 사무쳐 딜라일라에게 내뱉는다.

"딜라일라라는 이름은 남자들에게 영원한 저주가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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