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집에 가고 싶어지는 순간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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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집에 가고 싶어지는 순간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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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블랜차드.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 제공

 '집에 가고 싶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순간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그 생각은 대개 부지불식간에 솟구친다. 대부분 집에 가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 이뤄진다.

일이 끝나지 않아 지친 몸으로 회사에서 야근해야 할 때 더 간절해진다.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다.'

아무리 고대해온 해외여행이라도 열흘만 지나면 조금씩 그 생각이 고개를 쳐든다. 그것은 현지식을 먹다가 칼칼한 한국 음식이 당기는 시점과 비슷하게 겹친다. 해외여행을 다니다 보면 집의 고마움을 실감한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아도 그렇다. 집은 그런 곳이다.

집 생각이 간절할 때는 전쟁터에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장(戰場)에서처럼 집 생각이 절실할 때가 또 있을까. 최전선의 참호에서 고향에서 온 어머니의 편지를 읽을 때, 이름 모를 숲의 나무에 기대어 호주머니에서 꺼낸 애인 사진을 볼 때 미치도록 집이 그립다.

영화 제목은 가물가물하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가 아닐까. '주말의 명화' 시간에 흑백영화로 본 것 같다. 너무 오래 전이라 자신은 없지만 마지막 장면은 마치 어제 본 것처럼 선명하다.

연합군 병사가 숲속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작은 시냇물이 여울져 흐른다. 병사는 고향의 애인이 보내온 꼬깃꼬깃한 편지를 다시 꺼낸다. 수없이 읽었건만 편지를 또 읽는다.

'…사랑하는 당신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영원한 당신의 사랑으로부터.'

그때, 적병이 쏜 총알이 그의 가슴을 뚫는다. 병사는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편지를 놓친다. 편지가 바람에 몇 번 팔락거리다 시냇물에 떨어진다. 병사는 떠내려가는 편지를 잡으려 안간힘을 다해 손을 뻗쳐 보지만….

 

1차세계대전의 갈리폴리 전투에서 참호에서 휴식 중인 병사들 / 사진출처=위키피디아

 

1941년 12월7일 일본군의 기습공격으로 뒤집힌 채 가라앉고 있는 USS오클라호마함과 기관병 윌리엄 블랜처드가 일주일 전 아내에게 쓴 편지 / 사진출처 =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


블랜차드 기관병이 아내에게 쓴 편지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당신이랑 우리 아기가 점점 더 보고 싶어. 이제 다섯 달하고 19일이 지나면 만날 수 있겠지?…"

1941년 11월29일, 미국 하와이 진주만. USS오클라호마함에 탑승해 임무를 수행 중이던 미 해군 기관병 윌리엄 블랜차드. 그는 아내 로라 앤이 보내온 편지를 받자마자 서둘러 집으로 답장을 썼다. 6개월 된 아기가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8일 뒤인 12월7일 일본군은 하와이 진주만의 태평양함대를 기습했다. 불의의 어뢰 공격을 맞은 USS오클라호마함은 침몰한다. 블랜차드를 포함한 승조원 429명이 목숨을 잃었다. 생존자는 32명.

블랜차드의 유해는 훼손 상태가 심해 유족을 찾지 못한 채 오랜 세월 '실종자'로 분류되어 있었다. 지난해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미군의 DNA 감식 프로젝트로 확인되어 2021년 80년 만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아기'는 여든 살 노인이 되어 집으로 온 아버지 유해를 받아들었다.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유해를 DNA 감식으로 찾아 고향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하는 곳이다. DPAA는 미국이 왜 미국인가,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를 묵언으로 말하는 조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방부 유해발굴사업단이 역시 전사자 유해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한다. 나는 오래전 마산 진동면 산속에서 진행된 유해발굴작업을 동행 취재해 기사로 쓴 적이 있다. 삽과 붓으로 마치 유물을 발굴하듯 유해를 찾는 과정을 한 시간만 지켜보면 숙연해진다. 사단법인 물망초(이사장 박선영)는 북한에 억류중인 국군포로들을 집으로 돌아오게 하자는 운동을 벌이는 중이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전시 중인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아'. 조성관 작가 제공


왜 렘브란트 그림 앞에 서면 숙연해지나

집 떠나면 고생이다, 라는 말은 진리에 가깝다. 객지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보다 이 말에 공감한다. 집을 떠난 이유가 학업이 아니고 생존을 위해 투쟁이었다면 집에 대한 그리움은 절절하다. 기필코, 금의환향(錦衣還鄕)하겠노라 어금니를 앙다문다.

부모님이 계시는 집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는 사람이 있다. 한순간의 잘못된 생각으로 야반도주했거나 부모를 크게 실망하게 하고 이향(離鄕)한 사람, 죄를 저질러 무기수나 사형수가 된 사람…. 집 떠난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에 비례해 그리움도 커진다. 톰 존스가 부른 컨트리송 'Green Green Grass of Home'은 집행을 앞둔 사형수가 꿈속에서 가본 고향 집을 묘사한 노래다.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몇 개의 별칭을 갖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박물관의 도시라는 별칭이다. 몇 날 며칠을 다 보아도 보지 못할 정도로 소장품이 많은 에르미타주 박물관. 이곳에서 세계 각국의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 중의 하나는 플랑드르 작품을 한데 모아놓은 공간이다.

이 전시관에서 관람객들은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아' 앞에서 숨을 죽인다. 재산을 탕진하고 거지꼴로 전전하다가 집에 돌아온 아들과 그 아들을 말없이 품어주는 아버지. 늙은 아버지의 손끝과 표정에서 관람객은 고향 집은 아들의 행색을 가리지 않음을 읽어낸다.

나는 한 시간을 기다려 인파가 썰물처럼 빠지는 그 짧은 순간에 '돌아온 탕아'를 혼자 온전히 감상할 수 있었다. '돌아온 탕아'는 신약성서 누가복음 15장에서 빌려온 주제다. 많은 화가들이 이 주제를 그림으로 남겼지만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아'를 따라올 사람은 아직은 없다.

 

소강 민관식

 


집에서 잠자다 영면한 소강 민관식

'세계인문여행' 103회는 '그들이 맛본 세상의 마지막 음식'이었다. 이상의 멜론, 백남준의 우나동, 104세로 안락사한 구달의 '피시 앤 칩스' 등을 다뤘다. 이 글에 대해 미래이비인후과 장근호 원장이 카톡으로 이런 독후감을 보내왔다.

'극단적인 선택 아니고는 죽기 전에 최애 음식을 먹기 쉽지 않은데 백남준이나 구달은 운이 좋네요. 대부분 요즘은 수액주사 맞다가 저승 가지요. 죽기 전날 테니스 친 후에 술 마시고 자다가 돌아가신 민관식 전 문교부장관은 참 행복하게 죽은 예일 듯하네요…'

토씨 하나 버릴 말이 없었다. '대부분 요즘은 수액주사 맞다가 저승 가지요'라는 표현에서는 목 뒷덜미가 서늘해졌다.

집에서 자다가 영면(永眠)에 든 소강 민관식은 생전에 나와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2005년에 쓴 책 '민관식 콜렉션탐험기-실물로 만나는 우리들의 역사'로 인해 나는 일주일에 평균 두 번 이상 소강을 만났다. 어떤 때는 식사를 세 끼 연속 함께 한 적도 있다. 소강과 나만 그대로고 합석자들이 바뀌었다. 타계 일주일 전에도 만났다.

소강은 테니스 애호가였다. 최고 권위의 소강배 테니스대회는 그가 대한체육회장 시절 창설한 대회다. 유진선, 이형택을 비롯한 테니스 스타들이 소강테니스대회를 통해 성장했다. 소강은 일주일에 반드시 한 두 번은 테니스를 쳤다. 일요일 오후 소강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테니스를 했다. 집에서 아내가 차려준 저녁과 와인을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일어나지 못했다.

초상집이 잔치집처럼 왁자했다. 산 사람이 간 사람을 부러워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9988234도 아니고 9988004라고. 아흔아홉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틀이나 사흘 아프고 나흘째 죽는 게 최고 행복이라는 데 소강은 하루도 아프지 않고 자다가 갔다며.

소강은 어쩌다 저런 인생 최고의 복을 받았을까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 평생을 베풀었기 때문이 아닐까. 소강민관식육영재단을 만들어 수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었다.(1956년부터 지금까지 60년 넘게 장학회가 운영 중이다)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이 1959년 그의 4회 장학생이었다. 내 친구 중에도 그의 장학금을 받아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한 사람이 있다.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1916~1984).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 서서'를 읽고 한국미의 발견에 경탄한 사람이 적지 않다. 그는 1984년 12월16일 성북동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혜곡은 1976년 성북동으로 이사와 8년을 살다가 집에서 영면했다. 이사한 얼마 뒤 혜곡은 사랑방 처마에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라는 편액을 걸어놓았다. 안방에는 사방탁자와 의걸이장이 그대로 놓여있다. 혜곡의 옛집은 현재 등록문화재가 되어 일반에 공개한다.

노년의 나이가 되면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친구들의 부음을 자주 접하면서 '잘 죽는 문제'에 대해 진지해진다. 잘 죽는 게 잘사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나이 든 사람들 모임에서 사전의료동의서 이야기가 곧잘 화제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잘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오래 아프지 않고 집에서, 익숙한 것들 속에서 조용히 눈 감는 것이다.

앞에 인용한 의사의 카톡을 다시 보자. '대부분 요즘은 수액주사 맞다가 저승 가지요'. 이 짧은 문장은 많은 이야기들을 함축한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요양병원에 들어가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다 기력이 떨어져 수액주사(링거)를 맞다가 숨진다.

실제로 많은 노인이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치는 게 현실이다. 요양병원에 보내면서 자식들은 가슴이 미어진다. 건강해져 나오기가 거의 힘들다는 것을 알아서다. 요양병원에 보내진 부모들은 자식이 면회 올 때마다 "집에 가고 싶어, 집으로 보내줘"라고 말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체념한다. 병원에서 부모와 이별해본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한다.

내가 연구한 천재 54명. 이들 중 집에서 평화롭게 마지막을 맞은 사람을 여러 번 세어본 적이 있다. 괴테, 도스토옙스키, 드보르자크, 위고, 레핀, 처칠, 디킨스, 에펠, 프로이트, 구로사와 아키라, 나쓰메 소세키, 아서 밀러, 제롬 샐린저…. 이들 중 천상의 복을 타고난 사람은 괴테다.

사계(四季) 중에서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계절은 아무래도 겨울이다. 잎을 다 떨구고 헐벗은 나목의 숲을 보노라면 생성과 소멸이라는 자연의 순환 법칙 앞에 숙연해진다. 나뭇잎은 흙으로 돌아가기 위해 피어난다. 흙은 나뭇잎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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