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돌고래유괴단의 성공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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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돌고래유괴단의 성공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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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유괴단



회사 이름에서부터 눈길이 거침없이 유괴당한다.

사명과 상호에는 중후장대한 철학적 의미가 담겨야 한다는 믿는 세대에게는 황당해 보인다. 돌고래유괴단! 무슨 회사이름이 저래? 애들 장난도 아니고. 그렇다. 기존의 문법으로는 해독이 불가능하다.

광고·영화제작사 돌고래유괴단 대표는 신우석. 고졸이고 '가난 배틀'에서 져본 일이 없다고 한다. 고졸이다 보니 기성 광고회사에 들어가 차곡차곡 배워나갈 수가 없었다. 2007년 옥탑방에서 시작했다. 맨땅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마음대로 했다. 그렇다보니 애초에 고정관념이란 게 생기지 않았다. 그가 2018~2019년 대한민국 광고대상을 휩쓸었다.

김미리 기자가 쓴 '천만 광고 시대 연 '돌고래유괴단' 대표 신우석' 기사를 흥미진진하게 읽다가 중간쯤에서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돌고래유괴단을 성공 가도에 올라서게 한 게 2015년 '캐논' 카메라 광고.

'주인공(최현석 셰프)이 곰에게 잡아먹히는 황당 스토리. 임원 대상 테스트 영상 틀던 날, 싸늘했다. "나중에 보니 실무 담당자가 이건 젊은이들이 보는 거라면서 임원진을 설득했더라." "금요일 밤 유투브에 광고가 올라오자마자 바이럴 되면서 대박을 터뜨렸다." "때론 콘텐츠 만드는 것보다 콘텐츠 알아보는 눈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캐논사(社)의 임원이면 연령대가 아무리 낮게 잡아도 40대 후반. 대부분이 50대였으리라. 나이가 들면 대체로 뱃살이 나온다. 철저하게 관리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뱃살보다 더 심각한 것은 고정관념의 지방층이 두터워진다는 사실이다.

50대 이상이 20~30대의 사고방식을 이해한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내가 그렇다. 어떤 면에선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나이가 들면 대부분 고정관념이라는 벽에 갇힌다. 시야가 나날이 좁아진다. 새로운 것, 낯선 것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경계심이 생긴다. 하던 대로만 하려 한다. 인간 본성의 하나인 경로 의존성이 굳어질 대로 굳어져서다.

캐논 임원진을 높이 사고 싶은 대목은 그들이 자신들의 고정관념을 고수하지 않았다는 대목이다. 그들도 처음엔 마뜩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실무진의 설득을 수용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캐논 디지털카메라를 소비하는 세대는 MZ세대다. 실무진은 돌고래유괴단이 만든 콘텐츠가 MZ세대에게는 먹힌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1950년의 제롬 샐린저 / 사진출처=위키피디아

 

 


그들은 왜 '호밀밭의 파수꾼'을 놓쳤을까

젊은 시절 우연히 접한 한 권의 책이나 강연이 인생의 방향을 틀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19세기 말 빈의 고등학생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법조계를 지망했다. 우연히 동물해부학자 칼 브륄 교수의 강연을 듣고 법대에서 의대로 진로를 바꾼다. 미국 배우 조니 뎁은 고교 시절 가수를 꿈꿨다. 그러나 한 권의 소설을 읽고서 인생이 바뀌었다. 배우가 되기로 한다. 그 소설이 제롬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호밀밭의 파수꾼'과 얽힌 일화와 사건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대표적인 사례 하나. 1980년 12월, 가수 존 레논은 뉴욕 자택에서 나오다 권총을 맞고 숨진다. 존 레논을 살해한 범인의 호주머니에는 '호밀밭은 파수꾼'이 들어 있었다.

제롬 샐린저(1919~2010)가 미국 문단에 등장한 것은 1941년. 샐린저는 유대인 사업가의 아들로 뉴욕에서 태어나고 공부했다. 미국 현대문학사의 기념비적 작품 '호밀밭의 파수꾼'은 1951년 보스턴의 리틀 브라운(little Brown)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샐린저는 보스턴과 아무런 연고가 없다. 뉴욕 토박이고 뉴욕에서 습작했고 뉴욕에서 이름을 얻었다. 그런데 그의 첫 장편소설은 어떻게 보스턴에서 출판되었을까.

단편소설로 이름이 제법 알려진 샐린저는 장편소설로 승부를 보고 싶었다. 마침 하르코트 브레이스 출판사는 그에게 단편소설을 청탁한다. 이에 샐린저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써놓은 장편소설이 있으니 그걸 출판해 달라고 요청한다.

 

 

 

 

 

1951년 리틀 브라운사에서 출간된 '호밀밭의 파수꾼' 초판본 표지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크리스마스 시즌용(用)이라는 말에 출판사는 선뜻 동의한다. 하지만 편집자 로버트 지로는 원고를 읽어보고는 난색을 표한다. 표현이 너무 거칠고 욕설이 많아 이대로는 힘들겠다. 표현을 순화시켜줄 수 있느냐. 샐린저는 한 글자도 고칠 수 없다고 버틴다. 출판사도 완강했다. 원고를 손보지 않는 한 이대로 출판할 수 없다. 샐린저는 원고 뭉치를 들고 출판사를 나간다. 운명이 바뀌었다.

샐린저는 평소 자신에게 호의를 보인 보스턴의 신생 출판사 리틀 브라운에 원고를 특급우편으로 보냈다. 리틀 브라운 출판사 편집자는 원고를 읽자마자 한 글자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출판하겠다고 연락해왔다. 뉴욕의 하르코트 브레이스 출판사는 천문학적인 수익을 날려버렸다.

'호밀밭은 파수꾼'은 매년 미국에서만 수십만부가 팔린다. 이미 수십 개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의 젊은이들을 열광시킨다. 질풍노도의 사춘기들은 콜필드가 자신의 이야기라고 믿는다.

뉴욕과 보스턴의 두 출판사. 어디서 운명의 엇갈림이 벌어졌나. 하르코트 브레이스 출판사의 경영진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자신들의 잣대로 지구상에 없던 새로운 형식의 소설을 대했다. 10대~20대는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그들만의 사고방식과 표현방식이 있다. 출판사 경영진은 젊은 층의 눈높이에서 작품을 보려 하지 않았다.

'점잖지 못하게 어떻게 그런 표현을~'라며 고정관념의 잣대를 들이댔다. 하지만 리틀 브라운 출판사는 달랐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소설 그 자체만을 보았다. 고정관념이라는 컬러렌즈를 끼지 않고 맨눈으로 보니 '호밀밭의 파수꾼'의 엄청난 매력이 보인 것이다.

어떤 사람의 잠재력이나 어떤 창작물의 가치를 정확히 알아본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의 안목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 덧붙여 어떤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말에 '가방끈이 길다'는 표현이 있다. 공부를 오래 했다는 뜻이다. 가방끈이 길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그만큼 고정관념의 퇴적층이 두텁다는 의미다.

한국화가 박대성은 '독학 화가'로도 유명하다. 이건희 컬렉션에도 등장하는 그가 신문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열여덟살 때는 친척 어른의 소개로 호랑이 그림의 대가인 서정묵 선생께 배웠고, 이후 이영찬 박노수 석도륜 등 숱한 대가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았다. 대학에는 고수가 한두명 밖에는 없지만, 나는 학교에 속해있지 않아 모든 고수한테 배울 수 있었다. 학교 가지 않은 게 축복이었다."

현대 창업자 아산 정주영은 소학교 졸업이 학력 전부다. 아산 역시 고정관념과 관련,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자신은 학교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아 애초에 고정관념 같은 게 없었다고 말이다. 얼마 전 작고한 이어령 선생도 고정관념에 대해 언급한 일이 있다. 이어령 선생은 신문인터뷰에서 말했다.

"창조란 게 거창한 게 아니며 제 머리로 생각할 줄 안다는게 중요하다. 전쟁 때문에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해 고정관념이란 게 생기지 않았고, 남들이 정신없이 달릴 때 홀로 멈춰서서 보고 느끼고 생각했다."

 

 

 

 

 

오귀스트 로댕 / 사진출처=위키피디아

 

 


로댕이 미대 입시에서 3년 연속 낙방한 이유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1840~1918)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키스' '칼레의 시민들' '생각하는 사람'….

어린 시절 로댕은 우연히 도서관에서 접한 미켈란젤로 판화집을 보고 예술가가 되겠노라 결심했다. '프티 에콜' 시절 진흙 공작을 해보고 손과 진흙이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면서 조각으로 방향을 정한다. 로댕은 본격적으로 조각을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1857년 미술아카데미 '에콜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에 입학시험에 응시한다.

입시 요강대로 진흙 작품을 제출했지만 낙방했다. 불운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3년 연속 불합격!

훗날 위대한 천재 조각가로 추앙받는 로댕이 미술대학 입시에서 세 번 연거푸 떨어지다니. 로댕이 엉터리 작품을 제출해서일까. 도대체 입시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학교는 파리 6구, 보나파르트 길 14번지에 있다. 생 제르맹 대로변의 '되마고 카페' 옆 골목으로 곧장 걸어가면 왼편에 나온다. 센강과 프랑스학술원을 만나기 직전이다.

 

 

 

 

 

 

 

국립미술아카데미 '에콜 데 보자르' 내부 전경. 조성관 작가 제공

 

 



'에콜 데 보자르' 입학사정관들은 신고전주의 성향에 매몰되어 있었다. 하지만 수험생 로댕은 '프티 에콜'에서 18세기 조각을 배웠다. 입학사정관들은 신고전주의라는 고정관념에 휩싸여 로댕의 천재성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자신들이 정해놓은 고정관념의 틀 안에서 채점을 했다. 로댕은 결국 '에콜 데 보자르' 입학을 포기한 채 생활전선에 뛰어든다. 고정관념은 이렇게 무섭다.

창조력은 거창한 게 아니다. 기존의 생각을 전혀 다른 것과 연결시키는 데서 창의성이 터진다. 그 연결성을 가로막는 게 고정관념이다.

천재들은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다. 그들은 고정관념에 구속받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것에 목말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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